두 달 전에 산 캠핑 의자를 베란다에 접어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제 캠핑은 싫증 났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하면서 휴대폰으로는 다음 취미 영상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그 친구의 감정은 정확히 싫증입니다. 권태가 아닙니다.
싫증과 권태는 둘 다 한때 끌리던 것에 흥미가 식은 감정입니다.
손이 덜 가고, 떠올려도 설레지 않고, 하려면 억지로 해야 합니다. 식었다는 점이 같으니 섞어 쓰게 되죠.
싫증은 특정한 하나에 질린 것이고, 권태는 생활 전반이 무뎌진 것입니다.
싫증은 같은 것을 오래 또는 자주 해서 그것에 질린 상태입니다.
대상이 분명합니다. 캠핑에 싫증이 났지 모든 것에 싫증이 난 것은 아니죠. 그래서 싫증에는 대개 다른 것으로 옮겨 가려는 힘이 남아 있습니다.
다음 취미 영상을 넘기던 손이 그 증거입니다. 흥미가 사라진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기는 중이었던 겁니다.
권태는 특정한 무엇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전체적으로 무뎌진 상태입니다.
새 취미를 찾아봐도 시큰둥하고, 바꿔도 같을 것 같습니다. 옮겨 갈 곳이 떠오르지 않죠. 무엇에 질렸느냐고 물으면 딱 집어 말하기 어렵습니다.
권태와 지루함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싫증과의 경계만 보겠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 친구는 영상을 넘기며 서핑이 재밌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는 셈이겠지요.
싫증이라면 대상을 바꾸는 것으로 풀립니다. 의자는 접어두고 다음 것으로 가셔도 됩니다.
권태라면 대상을 바꿔도 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새 취미를 계속 사들이는 것이 답이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름을 먼저 정확히 하시면 지갑이 덜 열립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식은 것은 같습니다. 식은 것이 하나인지만 보시죠.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