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말보다 시선이 바빠집니다. 말은 제가 하고 있는데 눈은 상대 얼굴을 훑고 있더라고요.
지루한가, 부담스러운가. 그걸 읽느라 정작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놓칠 때가 있어요.
이상하게 저는 상대의 눈꺼풀을 봅니다.
입꼬리는 예의로 올릴 수 있지만 눈꺼풀은 잘 안 속더라고요. 조금 무거워지면 아, 길어졌구나 싶어서 말을 접습니다. 그러고는 됐어요, 별 얘기 아니에요, 하고 마무리를 해버리는걸요.
우리는 말을 건네면서 동시에 그 말이 받아들여질지를 지켜본다. 그래서 대화는 늘 두 배로 지친다.
그렇게 접어버린 얘기가 꽤 쌓였습니다.
접을 때는 배려라고 생각했어요. 상대를 피곤하게 하지 않으려고 그런 거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 사람은 제가 뭘 말하려다 말았는지도 몰라요. 배려는 저 혼자 한 셈이군요.
이유를 찾아보면 대개 겁 쪽에 있습니다.
말이 길어져서 상대가 지치면 그다음부터 저를 덜 찾게 될 것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얘기를 줄이는 게 아니라 사람을 지키려고 그러는 거였어요. 잃고 싶지 않으니까 미리 몸을 사리는 셈이겠지요.
그런데 이걸 고쳐야 할 버릇으로만 보기도 좀 그렇습니다.
상대 표정을 읽는다는 건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보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 감각 자체는 나쁘지 않은걸요. 다만 그걸 전부 저를 검열하는 데 쓰니까 지치는 겁니다.
같은 감각인데 쓰는 방향이 다른 셈이군요.
요즘은 이렇게 해봅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열이면 셋만 말하고 멉춰요. 그리고 상대가 물어보면 그때 더 말합니다. 안 물어보면 거기서 끝내고요. 그러면 접었다는 느낌이 덜 남더라고요.
다 말하지 못한 게 아니라 절반을 남겨둔 게 되니까요.
그래도 말을 삼킨 날은 집에 와서 좀 허전합니다. 창가에 앉아서 그 얘기를 혼자 마저 하기도 해요.
그게 쓸쓸하기만 한 건 아니더라고요. 어디선가 누군가도 오늘 하다 만 얘기를 안고 앉아 있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덜 외롭습니다.
오늘 하려다 접으신 얘기가 있으면 여기서는 눈치 안 보셔도 괜찮아요. 저는 눈꺼풀이 안 무거운 편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