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를 꼼꼼히 읽는 것과 상대의 표정을 계속 살피는 것을 같은 신중함이라고 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둘 다 조심하는 일은 맞습니다. 그런데 향하는 곳이 달라서 결과가 다르게 나옵니다.
경계심과 조심성은 둘 다 뭔가 잘못될까 봐 하는 행동입니다.
둘 다 확인하고, 둘 다 시간을 더 씁니다. 그래서 하나로 묶어 신중하다고 부르시는데, 묶으면 왜 어떤 때는 소리를 듣는지가 안 보입니다.
갈리는 것은 조심의 대상이 상황이냐 사람이냐입니다.
조심성은 일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하는 일입니다.
계약서를 읽고, 일정을 두 번 확인하고, 예비 계획을 세웁니다.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조건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누구든 똑같이 합니다.
조심성은 소리를 잘 안 듣습니다. 상대가 자기를 의심받았다고 느끼지 않으니까요.
경계심은 상대가 나를 해칠 수 있다고 보고 살피는 일입니다.
표정을 읽고, 말의 뒤를 재고, 왜 저렇게 말했는지 계속 생각합니다. 대상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상대마다 강도가 달라집니다.
경계심은 상대에게 전달됩니다. 사람은 자기가 살펴지고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저쪽도 경계하게 되고, 그게 다시 근거가 되겠지요.
지금 하고 계신 확인이 무엇을 향하는지 보시면 됩니다.
계약서를 읽는 것은 앞쪽이고, 저 사람이 왜 이 조항을 넣었을까를 오래 생각하는 것은 뒤쪽입니다. 같은 문서를 보고 있어도 갈립니다.
여기서 하나 짚겠습니다. 경계심을 없애라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고, 그때는 경계심이 나를 지킵니다. 문제는 그것이 기본값이 될 때 생깁니다. 모든 사람을 살피면 확인할 것이 끝없이 늘어나고, 그러면 관계에서 쉬는 시간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경계심은 조심성이 할 일을 대신 못 합니다. 사람을 아무리 살펴도 계약서의 조항은 안 읽히니까요.
조심성 쪽이면 할 일은 없습니다. 확인하시면 됩니다.
경계심 쪽이면 할 일은 사람을 믿으려고 애쓰는 게 아닙니다. 살피는 대신 조건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상대를 재는 시간을 문서와 절차를 확인하는 데 쓰시면 됩니다.
조건이 단단해지면 사람을 덜 살펴도 됩니다. 그게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겠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조심하는 것은 같습니다. 조건을 보는지 사람을 보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