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감정을 같은 말로 쓰십니다. 그런데 이 둘은 향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을 때, 우리는 대개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편한 말이니까요.
그런데 그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두 갈래가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그 사람이 한 일을 높이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 내가 서고 싶은 마음입니다.
앞의 것이 존경이고, 뒤의 것이 동경입니다.
문장으로 세워보면 금방 갈립니다.
존경은 상대에게서 끝나고, 동경은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존경은 마음이 편하고 동경은 마음이 자주 아픕니다.
존경하는 사람을 적어보라고 하면 두세 명을 적으십니다. 그런데 동경하는 사람을 적어보라고 하면 대개 한 명만 남습니다. 나머지는 존경이었던 겁니다.
섞어두면 두 가지가 어그러집니다.
첫째, 동경을 존경으로 부르면 조급함의 이유를 못 찾습니다. 그 사람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존경이라는 이름을 붙여두면 왜 무거운지 설명이 안 되죠. 존경은 원래 무겁지 않습니다. 무거웠다면 그건 비교가 섞인 겁니다.
둘째, 존경을 동경으로 부르면 자기를 쓸데없이 깎습니다. 그 사람처럼 되고 싶지 않은데도 되고 싶어 해야 할 것 같아지니까요. 살아온 길이 다른 사람을 목표로 세우면 도달할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서 오해가 자주 생깁니다. 동경을 부러움의 다른 말로 읽고, 그러니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동경은 방향을 알려주는 감정입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나 자신도 모를 때, 동경하는 사람 목록이 그걸 대신 말해줍니다. 그러니 지워야 할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동경에는 기한이 필요합니다. 오래 두면 그 사람이 기준이 되고, 기준이 남이 되면 내 걸음은 늘 늦은 걸음이 되니까요. 그래서 동경은 언젠가 계획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옮겨지지 않은 동경만 사람을 오래 갉습니다.
종이에 이름을 하나 적고 두 문장을 써보십시오.
"이 사람이 한 일 중에 내가 높이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의 자리 중에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앞 칸만 채워지면 존경입니다. 뒤 칸이 채워지면 동경이 섞인 겁니다. 둘 다 채워질 수도 있겠지요. 그건 정상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 존경이라면 그 사람에게 배우면 됩니다. 동경이라면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자리에 가기 위한 다음 한 칸을 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