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첫날에 오셔서 노트에 하고 싶은 일을 열두 개 적으셨다가 다 지우고 나가신 손님이 계셨어요.
쉬는 날이 아까우니까 자꾸 채우려고 하게 되죠.
그런데 열두 개를 적으면 그날 하나도 못 해요. 뭐부터 할지 정하는 데 시간이 다 가거든요. 그러다 저녁이 되면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서 더 허무해져요.
저도 가게 쉬는 날에 그랬어요. 지금은 하나만 정해요.
이게 제일 잘 통했어요.
꼭 하고 싶은 것 하나만 정하고 나머지는 비워두는 거예요. 그 하나를 하고 나면 그날은 성공이에요. 남은 시간에 뭘 하든 덤이고요.
같은 하루인데 어떻게 세느냐로 갈리더라고요.
손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 둘이 섞여서 헷갈리시는 것 같아요.
어디를 가고 뭘 보는 건 채우는 쪽이에요. 재미있는데 돌아오면 피곤해요. 아무 데도 안 가고 늦잠 자는 건 비우는 쪽이고요. 개운한데 아까운 느낌이 남아요.
문제는 이 둘을 하루에 다 하려고 할 때 생겨요. 오전엔 쉬고 오후엔 알차게 보내려다가 둘 다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요즘 쉬는 날마다 어느 쪽인지를 먼저 정해요. 그러면 하루가 안 흔들려요.
이 말씀도 드리고 싶어요.
계획을 못 세우는 게 게으른 게 아니라, 그럴 힘이 없을 만큼 지쳐 있는 거일 수도 있어요. 그럴 땐 계획을 세우려는 것 자체가 일이 돼요.
그런 날은 그냥 흘려보내셔도 괜찮아요. 아무것도 안 한 날도 하루예요. 오히려 그런 날 며칠이 있어야 다음 주가 굴러가더라고요.
쉬는 날을 잘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쉬는 걸 제일 방해하는 것 같아요.
전날 밤에 한 줄만 적어두시면 아침이 달라져요.
거창하지 않아도 돼요. 가보고 싶던 가게 하나, 미뤄둔 영화 하나, 오래 걷기 하나요. 아침에 눈뜨고 정하려면 그때부터 또 고민이 시작되거든요.
저는 쉬는 날 전날에 종이에 한 줄 적어서 식탁에 올려둬요. 그거 하나로 다음 날이 꽤 달라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