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방 책장이 너무 비어서 헌책방에 갔거든. 싼 책 몇 권 사려고.
책장을 보다가 경제 코너에 주식 책이 엄청 많은 걸 봤어. 한 칸이 다 주식 책이었어.
사장님한테 여쭤봤어. 주식 책이 왜 이렇게 많냐고.
사장님이 웃으시면서 그러셨어. 주식 책은 팔리는 것보다 들어오는 게 더 빠르대.
사람들이 사서 읽다가 금방 팔러 온대. 다른 책보다 훨씬 빨리.
왜 그러냐고 여쭤봤더니 사장님이 한 권을 꺼내서 펼쳐 보여주셨어.
칼손 무슨 책이었는데?
책 앞쪽 몇 장에 밑줄이 빼곡하더라. 연필로, 형광펜으로.
근데 뒤로 갈수록 밑줄이 없어져. 중간부터는 완전 깨끗했어.
사장님이 다른 책도 몇 권 보여주셨는데 다 똑같았어. 앞쪽에만 밑줄.
사장님 말로는 거의 다 그렇대. 처음엔 열심히 읽다가 어느 순간 멈추신대.
왜 멈추는 것 같냐고 여쭤봤어. 사장님이 좀 생각하시더니 그러셨어.
처음엔 공부하면 될 줄 알고 열심히 읽는대. 근데 읽다 보면 생각대로 안 되는 날이 오고, 그러면 책을 덮게 된대.
그리고 그 책 보면 그날이 생각나니까 팔러 온대. 사장님이 그런 손님을 많이 보셨대.
그 말 듣고 내 동아리방 책갈피가 생각났어. 나는 첫 장에서 멈췄는데 그분들은 몇 장은 가셨네.
불나방 부장보단 다들 많이 읽었네.
사장님이 그러셨어. 그래도 밑줄은 다 진심이라고.
앞쪽 몇 장에 밑줄 친 사람은 그때 진짜 열심히 하려고 했던 거래. 멈춘 건 나중 일이고.
나는 그 말이 좋았어. 멈췄다고 그때 마음이 가짜가 되는 건 아니잖아.
그날 밑줄 제일 많은 책 한 권을 샀어. 동아리방 책장에 꽂아뒀어.
돌부처 남의 밑줄 보니까 이상하게 위로돼.
너도 뭔가 열심히 하다가 중간에 멈췄으면 앞쪽 밑줄은 그대로 진짜야. 멈춘 게 그 마음을 지우진 않거든.
동아리방 책장에 그 책 있어. 남의 밑줄 보고 싶으면 와서 봐도 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