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속상하다고 말씀하시다가 마지막에야 그 사람 이름을 꺼내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이름이 나오고 나서야 이야기가 정리되더군요. 두 이름은 향하는 곳이 다릅니다.
속상함과 서운함은 둘 다 마음이 아래로 내려가는 상태입니다.
둘 다 하루가 무거워지고, 둘 다 말하고 나면 좀 낫습니다. 그래서 하나로 쓰이는데, 원인이 다릅니다.
속상함은 일에서 오고 서운함은 사람에게서 옵니다.
속상함은 바라던 대로 안 됐을 때 오는 감정입니다.
떨어졌고, 망가졌고, 애쓴 것이 헛돌았습니다. 대상이 일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없어도 옵니다. 혼자 한 일에도 속상할 수 있죠.
속상함은 말할 사람을 찾지만 따질 사람은 없습니다.
서운함은 그 사람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입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대로 서운함은 기대가 사람에 걸려 있을 때 옵니다. 그래서 대상이 분명하죠. 누구 때문인지 댈 수 있습니다.
서운함은 그 사람에게 말해야 풀립니다. 다른 데 말하면 덜어지긴 해도 안 풀리더군요.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하루 종일 말씀하시다 마지막에 이름이 나오셨으면 처음부터 뒤쪽이었던 겁니다. 다만 그 이름을 꺼내기가 어려우셨겠지요.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서운함을 속상함이라고 부르면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게 됩니다. 그러면 위로는 받는데 상황은 그대로죠.
그리고 그 사람은 계속 모릅니다. 모르니까 또 같은 일이 생기고요. 몇 번 반복되면 그 관계가 멀어집니다.
속상함 쪽이면 할 일은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든 한 번 꺼내시면 가벼워집니다.
서운함 쪽이면 할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한 줄로 말하는 것입니다.
탓하는 문장이 아니라 바랐던 것을 적는 문장으로요. 그러면 대개 풀립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가라앉은 것은 같습니다. 이름이 나오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