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에서 자기가 낸 안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정리되는 걸 보고도 끝까지 웃고 있었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나와서는 하루 종일 그 장면이 돌았다고 하시더군요.
본인은 그걸 서운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고쳐 말씀드렸습니다. 그건 서운함이 아니라 억울함입니다.
이름이 달라지면 그 자리에서 했어야 할 일도 달라집니다.
서운함은 내 기대가 어긋났을 때 생깁니다. 이 정도는 챙겨주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던 것. 상대는 약속한 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긋난 건 사실이 아니라 기대입니다.
억울함은 사실이 틀리게 알려졌을 때 생깁니다. 내가 한 일이 안 한 것으로 되어 있거나, 안 한 일이 한 것으로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어긋난 건 기대가 아니라 기록입니다.
이 둘을 섞어 부르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억울한 사람이 자기가 예민한 줄 압니다.
서운함은 시간이 지나면 대개 줄어듭니다. 기대는 내 안에 있는 것이라 내가 조정할 수 있으니까요. 며칠 지나 다시 보면 상대가 그럴 사정이 있었구나 하고 접히기도 합니다.
억울함은 시간이 지나도 안 줄어듭니다. 바깥의 사실이 틀린 채로 남아 있는 한, 내 안에서 아무리 조정해도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그 장면이 하루 종일 도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마음이 좁아서가 아니라 아직 정정되지 않아서입니다.
그 일을 제삼자가 봤다면 무엇이라고 말했겠습니까?
앞쪽은 태도의 문제이고 뒤쪽은 사실의 문제입니다. 태도는 요구하기 어렵지만 사실은 정정할 수 있지요.
서운함 쪽이면 할 일은 기대를 말로 바꾸는 것입니다. 말하지 않은 기대는 상대 입장에서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부터 이건 알려달라고 한 줄로 말하면 대개 끝납니다. 안 말하면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겠지요.
억울함 쪽이면 할 일은 사실을 한 번 놓는 것입니다. 따지는 게 아닙니다. 감정을 싣지 않고 사실만 짧게 놓으면 됩니다. "그 안은 제가 정리했던 겁니다."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놓지 않으면 그 사실은 앞으로도 계속 틀린 채로 굳습니다.
억울한데 서운함으로 부르면 이 문장을 영영 못 놓게 됩니다. 서운함은 말하지 않고 접는 감정이니까요. 이름 하나 때문에 해야 할 말을 삼키게 되는 겁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있으셨다면 하나만 확인해보시죠. 틀어진 게 기대인지 사실인지.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 애매하시면 그 장면을 같이 세워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