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게시판에 공사 안내문이 붙었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끝에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고요.
그런데 공사가 예정보다 이틀 늘어났고, 그 뒤에 붙은 안내문에도 같은 문장만 있었답니다. 그 분은 그게 이상하게 거슬렸다고 하셨습니다.
거슬린 이유가 있습니다. 두 번째 자리에는 양해가 아니라 사과가 와야 했으니까요.
양해와 사과는 둘 다 상대에게 불편을 끼친 쪽이 하는 말입니다.
둘 다 고개를 숙이는 말이고, 둘 다 상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섞어 쓰게 되죠. 그렇다면 둘은 어디서 갈릴까요?
양해는 일이 나기 전에 사정을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고, 사과는 일이 난 뒤에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양해는 앞으로 생길 불편을 미리 알리는 말입니다.
공사가 있으니 소음이 있겠다, 오늘은 일찍 나가야 하겠다 같은 것입니다. 불편은 아직 오지 않았고, 사정이 있다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말은 아닙니다.
첫 번째 안내문은 정확했습니다. 예정된 공사를 미리 알렸으니까요.
사과는 이미 끼친 불편이나 잘못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예정보다 이틀이 늘어난 것은 미리 알린 범위를 넘은 일입니다. 약속한 것이 지켜지지 않았죠. 그 자리에 다시 양해를 구하면 넘은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말이 됩니다.
거슬렸던 것은 문장 때문이 아니라 이름이 틀려서였습니다. 게시판 앞에 서 계셨던 다른 분들도 비슷하게 느끼셨겠지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양해로 시작한 일도 약속을 넘으면 사과로 바뀝니다. 같은 일인데 시점이 이름을 바꾸는 겁니다.
양해를 구하는 쪽이라면 사정과 기간을 정확히 알리면 됩니다.
사과할 쪽이라면 무엇을 넘었는지를 먼저 말해야 합니다. 그 한 줄이 빠지면 몇 번을 고개 숙여도 상대에게는 같은 안내문으로 읽힙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고개를 숙인 것은 같습니다. 일이 이미 났는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