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앉아 있는데 벽에 걸린 화면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안이었는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본 건 문장 하나였습니다. 유감을 표한다.
그 순간 옆자리 손님이 일행에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저게 사과야?"
저는 그 손님이 정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건 사과가 아닙니다. 사과가 아니라는 게 저 사람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냥 다른 말이라는 뜻입니다.
유감은 내 기분을 알리는 말입니다. 주어가 나의 감정입니다. "나는 이 일이 안타깝다." 이 문장 안에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사과는 내가 한 일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주어가 나의 행동입니다. "내가 그 일을 했고 그건 잘못이었다." 이 문장 안에는 반드시 행동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유감은 지진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고 사과는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면 사과할 수가 없으니까요. 이게 두 말의 경계입니다.
여기서 제가 사정을 짐작해 말씀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없었고, 알지 못하는 걸 아는 척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본 것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유감이라는 말은 미안함처럼 들리면서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은 사과를 들었다고 느끼고, 말한 사람은 아무 행동도 자기 것으로 적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다른 문장을 주고받은 셈이지요.
그리고 이 말은 뉴스에만 있지 않습니다. 화면에서 내려와 사람들 대화로 들어옵니다. 저는 그게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집이나 회사에서 이런 문장을 들으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셋 다 주어가 감정이거나 상황입니다. 행동이 하나도 안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듣고 나서도 이상하게 안 풀립니다. 분명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마음이 그대로 남습니다.
남는 게 당연합니다. 인정된 사실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들은 문장에서 동사 하나만 찾아보시면 됩니다.
한 문장이면 갈립니다. 오래 볼 필요가 있을까요.
유감을 사과로 잘못 부르면 받은 적 없는 것을 받았다고 적게 됩니다. 그러면 여전히 서운한 자기를 이상하게 여기게 됩니다. 예민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안 받았기 때문인데도요.
반대로 사과를 유감으로 깎아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가 자기 행동을 분명히 적었는데 형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없던 일로 치는 겁니다. 이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받은 건 받은 것으로 적어야 다음이 있겠지요.
제가 하려는 건 상대를 평가하는 일이 아닙니다. 들은 문장을 정확하게 적어두는 일입니다. 정확하게 적어야 그다음에 무엇을 요구할지가 정해집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최근에 들으신 미안하다는 말이 있으셨습니까? 하나만 확인해보시죠. 동사의 주인이 행동이었는지 감정이었는지.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