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본 두 권을 나란히 펼쳐 놓은 손님이 계셨습니다. 한쪽엔 "초인", 다른 쪽엔 "위버멘쉬"라고 적혀 있다고요. 초인이라는 말을 보고 망토 두른 영웅을 떠올렸는데, 읽어 보니 그런 얘기가 아닌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맞게 느끼셨습니다. 그 어긋남이 이 말을 이해하는 입구죠.
독일어 위버(über)는 "넘어", "위로"라는 뜻이고, 멘쉬(Mensch)는 사람입니다. 합치면 "사람을 넘어선 자", 혹은 "사람 너머로 건너가는 자"쯤 되겠죠.
초인(超人)도 틀린 번역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말 초인은 힘이 센 특별한 존재를 먼저 떠올리게 하죠. 그래서 요즘 번역본 가운데는 원어를 그대로 살려 위버멘쉬라고 쓰는 쪽도 많습니다.
이 말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산에서 내려온 차라투스트라가 시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하는 장면이죠.
요지는 이렇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친다. 사람은 넘어서야 할 무엇이다. 너희는 사람을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
바로 뒤에 유명한 비유가 이어집니다. 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에 걸린 밧줄이라고요. 심연 위에 걸린 밧줄이라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위대한 까닭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다리라는 데 있다고 하죠.
여기서 드러납니다. 니체가 말한 건 도착한 존재보다 건너가는 움직임에 가깝습니다.
초인이라고 하면 완성된 누군가를 올려다보게 되죠. 위버멘쉬는 오히려 제 발밑을 보게 합니다. 지금의 저를 다리로 쓰라는 말이니까요.
또 하나. 위버멘쉬는 남을 누르는 강자가 아닙니다. 니체가 넘어서라고 한 건 남이 아니라 어제의 제 자신이었죠. 이 말을 남 위에 서는 논리로 끌어다 쓴 역사도 있었기에, 이 대목은 조심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너는 도착점이 아니다. 너는 다리다. 다리가 부끄러워할 일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건너지 않는 것이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일상으로 옮기면 소박합니다.
어제 못 하던 것을 오늘 조금 합니다. 남이 정해 준 가치 대신 제 가치를 하나 세웁니다. 넘어서지 못한 날도 밧줄 위에 있다는 걸 기억합니다. 멈춰 섰다고 끝난 건 아니니까요.
그 손님은 결국 위버멘쉬라고 적힌 쪽을 빌려 가셨습니다. 영웅 얘기가 아니라 다리 얘기라서 오히려 가깝게 느껴진다고요.
저도 아직 건너는 중입니다. 다 건넜다고 말할 날은 없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오늘 밧줄 위에서 한 걸음을 떼는 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그 걸음들이 제가 만드는 다리가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