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목의 책 네 권을 다 뽑아서 바닥에 늘어놓고 앉아버리신 분이 계셨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계시더군요.
결국 한 권도 안 들고 나가셨습니다. 고르다 지치신 겁니다. 저는 그 자리를 보면서, 우리가 읽기도 전에 지치게 만드는 관문이 하나 있구나 싶었습니다.
먼저 이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래된 책일수록 번역본이 많은 게 당연하죠.
원저작권이 풀린 고전은 누구나 새로 옮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말이라는 게 삼십 년만 지나도 낡습니다. 그래서 세대마다 새로 옮기게 되죠. 번역본이 많다는 건 그 책이 오래 읽혔다는 표시입니다.
같은 문장을 두고도 옮기는 사람마다 다른 선택을 합니다. 원문의 구조를 살릴 것인가, 우리말의 자연스러움을 살릴 것인가.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지의 문제입니다.
둘 중 하나가 옳은 게 아닙니다. 다만 처음 읽는 책이라면 뒤쪽이 낫더군요. 안 읽히는 명역보다 끝까지 간 평범한 번역이 남는 게 많습니다.
정보를 다 찾아보고 고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손님들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같은 대목을 세 권에서 펼쳐 읽어보십시오. 아무 데나 말고, 각 권의 같은 자리를 여십시오. 앞머리 세 쪽이면 충분하죠. 한 문단만 읽어도 손이 아는 게 있습니다.
읽다가 숨이 막히는 쪽은 놓으시고, 그냥 넘어가지는 쪽을 드십시오. 이게 어떤 평가보다 정확합니다. 읽을 사람이 나이기 때문입니다.
세 권이 다 비슷하게 느껴지면 그때 이걸 보십시오.
첫째, 원서에서 바로 옮겼는지입니다. 다른 언어를 거쳐 온 번역은 한 다리를 더 건넌 것이니까요. 판권 쪽을 보면 대개 적혀 있죠.
둘째, 주석의 양입니다. 배경 지식이 필요한 책은 주가 많은 쪽이 편하죠. 반대로 소설을 그냥 읽고 싶으실 때는 주가 적은 쪽이 흐름이 안 끊깁니다.
도구를 고르는 데 쓴 시간은 결국 쓰지 못한 시간이다.
새 번역이 늘 나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더군요.
오래전 번역 중에는 문장 자체가 하나의 우리말 자산이 된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낡았는데, 그 낡음이 그 책의 시대와 잘 맞는 경우가 있죠. 반대로 최신 번역이 지나치게 매끈해서 원문의 거친 맛이 사라진 경우도 봅니다.
그러니 연도만 보고 고르지는 마십시오. 결국 펼쳐보는 게 제일 빠릅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번역본 고르기는 읽기의 준비지 읽기가 아닙니다.
잘못 골랐다고 큰일이 나지 않습니다. 읽다가 안 맞으면 다음번에 다른 판으로 바꾸시면 되고, 그때는 이미 내용을 아니까 비교도 훨씬 쉬워지죠. 두 번 읽는 게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닥에 네 권을 늘어놓고 앉아 계셨던 그분께 제가 못 드린 말이 이거였습니다. 고르는 일은 여기서 끝내고, 남은 힘은 읽는 데 쓰시라는 말이요. 어느 쪽을 고르셨든 펼친 사람이 읽은 사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