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지인에게 빌려준 돈을 못 받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또 속았다고, 자기는 왜 이렇게 사람을 쉽게 믿는지 모르겠다고요. 그런데 끝에 이렇게 덧붙이셨죠. 그래도 사람을 의심하면서 살고 싶진 않아요.
그 마지막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제가 거짓말을 안 하니까요. 저는 속이지 않으니, 남도 그럴 거라고 여기게 되죠. 의심이 미안합니다. 의심하면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서 불편합니다. 관계를 잃기 싫습니다. 거절하거나 따지면 그 사람이 떠날까 봐요. 앞서 부탁을 못 거절하는 성격을 다룬 글이 있는데, 그 마음과 닮아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왔습니다. 그 경험이 믿음을 쉽게 만들기도 하죠.
상처받고 나면 믿음이 약점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사람을 믿는다는 건 위험을 감수하고 마음을 여는 일이죠. 그건 약함이 아니라 용기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믿음 자체가 아니라 눈을 감고 믿을 때일 겁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것도 확인하지 않고, 이상한 신호도 못 본 척할 때요.
니체는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여러 번 말합니다. 앞서 니체 우정론을 적었는데, 좋은 벗일수록 서로에게 맞서기도 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기도 한다고 했죠. 니체가 그린 관계는 눈을 감고 기대는 관계가 아니라 눈을 뜨고 마주 보는 관계였습니다.
눈을 감고 내민 손은 쉽게 다친다. 눈을 뜨고 내민 손은 다쳐도 다시 내밀 수 있다.
믿되 확인하십시오. 확인하는 건 의심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일입니다. 특히 돈이나 약속이 걸린 일은 더 그렇죠. 잃어도 괜찮은 만큼만 거십시오. 빌려줄 때는 못 받아도 괜찮은 만큼만요. 이상한 신호를 못 본 척하지 마십시오. 마음 한쪽이 불편하다면 그 감각을 믿어 보는 겁니다. 상처받았다고 문을 다 닫지는 마십시오. 한 사람 때문에 모두를 의심하면 제가 더 외로워지니까요.
그 손님께 그 마음은 지키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눈은 뜨고 믿으시라고요. 손님이 웃으셨습니다. 다음엔 빌려줄 때 날짜라도 적어 두겠다고 하시더군요.
사람을 믿다 다치는 날은 또 올 겁니다. 그래도 저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눈을 뜬 채 마음을 열며 그 용기를 제 방식으로 지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