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실수를 세 번 넘겨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자기가 너그러워서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무엇이 잘못됐는지 여쭤보니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이름이 갈립니다.
관용과 방관은 밖에서 보면 같습니다.
둘 다 지적하지 않고, 둘 다 그냥 넘어갑니다. 상대 입장에서도 같습니다. 아무 일이 안 일어났으니까요.
갈리는 것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느냐입니다.
관용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면서 넘어가는 일입니다.
지적할 수 있었고, 지적할 근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고 판단해서 안 한 겁니다. 판단이 들어간 선택이지요.
그래서 관용에는 기록이 남습니다. 무엇을 몇 번 넘겼는지 압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 꺼낼 수 있습니다.
방관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안 본 상태입니다.
귀찮거나, 관심이 없거나, 부딪히기 싫어서 안 봅니다. 안 봤으니 판단도 없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너그러워 보이는데 실제로는 자리를 비운 겁니다.
방관은 값이 나중에 옵니다. 세 번이 열 번이 되고, 그때는 말하기가 더 어려워지겠지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때 무엇이 잘못됐는지 지금 말할 수 있습니까?
세 번을 넘겼는데 무엇을 넘겼는지 모르시면, 너그러웠던 게 아니라 안 보셨던 것입니다.
이 오해가 흔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두 이름 다 갈등을 안 만드니까요.
부딪히지 않으면 그 자리는 평화롭습니다. 그래서 방관하는 사람도 자기가 잘 참고 있다고 느낍니다. 참을 것을 본 적이 없는데도요.
여기서 손해를 보는 쪽은 대개 넘겨받은 사람입니다. 고칠 기회를 못 받으니까요.
관용 쪽이면 할 일은 없습니다. 다만 언제까지 넘길지는 정해두시는 게 좋습니다. 끝이 없는 관용은 결국 방관이 되니까요.
방관 쪽이면 할 일은 지적하는 게 아닙니다. 먼저 보는 것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한 번 정확히 적어보시면 됩니다.
적어놓고 나서 넘길지 말할지를 정하시면 됩니다. 그때부터는 어느 쪽이든 관용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넘어간 것은 같습니다. 무엇을 넘겼는지 아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