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대에 책 두 권이 올라왔습니다. 하나는 자격증 문제집, 하나는 여행 에세이였죠. 손님이 멋쩍게 웃으시더군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둘 다 빌린다고요. 곧 서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두 권이 나란히 놓인 모습이 오래 남았습니다.
서른이라는 나이 자체가 무언가를 바꾸지는 않죠.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과 서른의 첫날은 같은 몸, 같은 방입니다.
조급함을 만드는 건 대개 비교할 거리입니다. 누구는 자리를 잡았고, 누구는 결혼을 했고, 누구는 집을 알아본다는 소식이 한꺼번에 들려오는 시기죠. 앞서 남과 비교하게 되는 마음을 적었는데, 서른 무렵엔 그게 한데 몰려옵니다.
몇 가지 착시가 겹쳐 있습니다.
보이는 건 결과뿐입니다. 남의 소식은 대개 결론만 들리죠. 그 앞의 망설임은 잘 안 들립니다. 비교 대상이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친구의 직장, 저 친구의 연애, 또 다른 친구의 여유를 합쳐 한 사람처럼 세워 두고 거기에 저를 대 봅니다. 시간표가 하나라고 믿습니다. 몇 살엔 무엇을 해야 한다는 표가 어딘가 있는 것처럼요.
그 표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따져 보면 주인이 없습니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양심이 무엇을 말하느냐고 묻고 이렇게 답합니다.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말년의 책 『이 사람을 보라』의 부제도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였죠.
여기서 눈여겨볼 말은 되어라입니다. 이미 정해진 나를 찾아내라는 게 아니라, 되어 가라는 거죠. 되어 가는 일에는 정해진 도착 시각이 없습니다.
남의 시계로 늦었다고 말하지 마라. 네가 가는 길에는 네 시계밖에 없다.
조급함을 한 문장으로 적어 보십시오. "무엇이 늦었는가"를 구체적으로요. 막연할 때보다 대개 작아집니다. 그중 제가 원하는 것만 남기십시오. 남들이 해서 불안한 것과 제가 바라는 것은 다를 때가 많습니다. 남은 것 중 하나만 이번 달에 손대십시오. 문제집이든 여행이든요.
두 주 뒤 그 손님이 반납하러 오셨습니다. 문제집은 몇 장 풀다 말았고, 에세이는 다 읽었다고 하시더군요. 그걸 보고 뭘 하고 싶은지 조금 알겠다고요.
서른 앞에서 늦었다는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저라면 그 느낌을 마감이 아니라 방향을 묻는 신호로 쓰겠습니다. 어디로 갈지는 남의 소식이 아니라 제가 정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