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하다는 말을 들으신 뒤로 그 사람 앞에서 말수가 줄었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좋은 뜻으로 한 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도착한 것이 달랐죠.
애틋함과 짠함은 둘 다 상대를 보고 마음이 아린 상태입니다.
둘 다 그 사람이 잘됐으면 좋겠고, 둘 다 뭔가 해주고 싶어집니다. 그러면 무엇이 갈릴까요?
그 사람이 나와 같은 자리에 있느냐입니다.
애틋함은 아끼는 사람을 볼 때 오는 마음입니다.
오래 본 사람, 같이 겪은 사람, 소중한 사람이죠. 그 사람이 힘들면 내가 같이 아립니다. 같은 자리에 있으니까요.
애틋함에는 위아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받는 쪽도 편합니다.
짠함은 상대가 안돼 보일 때 오는 마음입니다.
고생한 것을 알거나, 처지가 어려워 보이거나 합니다. 나쁜 뜻은 없습니다. 오히려 따뜻한 마음이죠.
다만 짠함에는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이 나뉩니다. 그래서 받는 쪽에서는 자기가 안돼 보였다는 것이 같이 도착합니다. 말수가 줄어드는 것이 그 지점이겠지요.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연민과 동정도 같은 구조였습니다. 옆에 서느냐 위에서 보느냐로 갈리는 쌍이 여럿 있더군요.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짠하다는 말을 하는 쪽에서는 따뜻한 말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굳으면 왜 그러는지 모릅니다.
받는 쪽에서도 설명이 어렵습니다. 좋은 뜻인 걸 아니까 뭐라 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그냥 말수만 줄게 됩니다.
애틋한 마음이면 그대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짠한 마음이면 할 일은 그 마음을 없애는 게 아닙니다. 말로 낼 때 상대의 자리를 안 낮추는 것입니다. 고생했겠다는 말보다 그때 어땠느냐고 물으시면 됩니다.
같은 마음인데 묻는 형태로 나가면 위아래가 안 생기더군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마음이 쓰이는 것은 같습니다. 자리가 나뉘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