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부서에서 아무 문제 없이 지내신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시더군요.
부딪힌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잘 적응했다고 여기셨는데, 이름이 달랐습니다.
적응과 순응은 밖에서 보면 같습니다.
둘 다 문제를 안 만들고, 둘 다 시키는 대로 합니다. 주변에서는 잘 지낸다고 봅니다. 그러면 무엇이 갈릴까요?
나도 편해졌느냐입니다.
적응은 새 환경에 나를 맞추면서 나에게 맞는 자리도 찾은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하다 보니 익숙해지고, 그 안에서 내가 편한 방식도 생깁니다. 그래서 적응이 끝나면 힘이 덜 듭니다. 처음보다 덜 피곤해지죠.
적응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자기 얘기를 합니다. 이건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말할 수 있고요.
순응은 나만 맞춘 상태입니다.
부딪히지 않으려고 다 맞춥니다. 그래서 문제가 안 생깁니다. 그런데 맞추는 데 계속 힘이 듭니다. 시간이 지나도 안 줄어들죠. 매번 참아야 하니까요.
순응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자기 얘기를 안 합니다. 말하면 부딪히니까요.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몇 달이 지났는데 여전히 일요일 저녁이 무거우시면 뒤쪽입니다. 익숙해지는 것과 편해지는 것은 다르니까요.
여기서 하나 짚겠습니다. 순응을 흉으로 부르려는 게 아닙니다.
바꿀 수 없는 자리가 있고, 잠깐 지나갈 자리도 있습니다. 그럴 때 순응은 자기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다투는 데 힘을 안 쓰는 것이 나을 때가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것을 적응이라고 부를 때 생깁니다. 잘 지내고 있다고 여기면 왜 계속 피곤한지를 못 찾게 되거든요. 그러면 자기 체력이나 성격 탓을 하게 되겠지요.
적응 쪽이면 할 일은 없습니다.
순응 쪽이면 할 일은 더 참는 것도 크게 부딪히는 것도 아닙니다. 작은 것 하나를 내 방식으로 바꿔보는 것입니다. 자리 배치든 일하는 순서든 회의에서 한마디든요.
하나가 통하면 그때부터 적응 쪽으로 넘어갑니다. 안 통하면 그건 바꿀 수 없는 자리라는 정보를 얻으신 겁니다. 그것도 알아야 다음을 정할 수 있고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문제가 없는 것은 같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덜 피곤한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