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어머니와 같이 밥을 드신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반찬 뚜껑을 여는 손이 예전보다 느려진 것을 보셨다고요.
그날 밤 잠이 안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그리움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매일 곁에 계십니다. 그 마음은 그리움이 아니라 애틋함입니다.
애틋함과 그리움은 둘 다 소중한 사람을 떠올릴 때 가슴이 아리는 마음입니다.
목이 메고,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집니다. 아리다는 점이 같으니 섞어 부르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애틋함은 곁에 있는 사람을 안쓰럽게 여기며 아끼는 마음이고, 그리움은 곁에 없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애틋함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에게 생깁니다.
함께 있으니 그 사람의 작은 변화가 보입니다. 느려진 손, 늘어난 흰머리, 작아진 목소리 같은 것들이요. 그 변화가 마음을 아리게 하는 거죠. 애틋함에는 잃을까 하는 마음과 아끼는 마음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매일 보는 사이라서 더 잘 보이는 것이겠지요.
애틋함과 짠함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리움과의 경계만 보겠습니다.
그리움은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생깁니다.
멀리 사는 가족, 연락이 끊긴 친구, 이제 만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다는 거리가 그리움을 만듭니다. 그래서 그리움은 만나면 채워집니다. 그렇다면 애틋함은 어떨까요? 만나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미 만나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곁에 있는 사람을 그리워한다고 부르시면 아직 함께할 시간이 이미 지나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날 밤 잠이 안 왔던 것도 그 이름 때문이었을까요? 조금은 그랬을 겁니다.
애틋함이라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내일 저녁 뚜껑을 먼저 열어드리는 일 같은 것들이요.
그리움이라면 연락하거나 기억을 꺼내는 것이 할 일입니다. 이름이 정확하면 그 마음을 어디에 쓸지가 보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아린 것은 같습니다. 지금 볼 수 있는 사람인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