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것과 같은 포장의 쫀드기를 보신 분이 계셨습니다.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그 분은 그게 그리움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문방구에 같이 다니던 친구 이름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답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은 그리움보다 향수에 가깝습니다.
그리움과 향수는 둘 다 지금 곁에 없는 것을 떠올리며 마음이 그쪽으로 가는 감정입니다.
가슴 한쪽이 따뜻하면서 아리고, 한동안 멍하니 있게 됩니다. 결이 비슷하니 하나로 부르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그리움은 특정한 사람이나 대상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고, 향수는 지나간 시절이나 떠나온 곳의 분위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리움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향합니다.
할머니, 헤어진 친구, 키우던 강아지처럼 얼굴과 이름이 있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그리움은 대개 "보고 싶다"는 말로 나옵니다. 그 대상이 다시 나타나면 채워지는 감정이죠.
그리움과 미련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붙들고 있느냐로 갈랐고요.
향수는 한 사람이 아니라 그때의 분위기 전체를 향합니다.
문방구 앞의 햇빛, 학교 끝나고 걷던 길, 그 시절의 냄새 같은 것들입니다. 그 안에 있던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도 향수는 생깁니다. 그 분이 그리워한 것은 친구가 아니라 그 오후였던 거죠.
향수는 채워지기 어렵습니다.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쫀드기 앞에 서 계셨던 몇 분은 향수의 시간이었습니다. 친구 이름이 떠올랐다면 그리움으로 바뀌었겠지요.
그리움이라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보실 수 있습니다. 대상이 있는 감정이니까요.
향수라면 연락할 곳이 없습니다. 쫀드기를 하나 사서 그 시절을 잠깐 꺼내 보는 정도가 그 감정의 크기에 맞습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지금 없는 것을 향하는 것은 같습니다. 얼굴이 떠오르는지만 보시죠.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