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지 삼 년 된 동네를 일부러 두 정거장 돌아서 지나간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본인은 그걸 그리움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저는 한 가지만 여쭈었습니다. 지나가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느냐고요.
"다시 그 집에 들어갈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요."
그건 그리움이 아닙니다. 미련입니다. 이름이 틀리면 하는 일도 틀어집니다.
그리움은 끝났다는 걸 이미 아는 감정입니다. 끝난 줄 알면서도 그때가 좋았다는 감각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시선이 과거를 봅니다.
미련은 아직 안 끝났다고 보는 감정입니다. 되돌릴 여지가 남아 있다고 계산하는 상태입니다. 시선이 지금과 앞을 봅니다.
둘 다 같은 대상을 떠올리니까 하나로 뭉뚱그려 부르시는데, 사실은 방향이 반대입니다.
그리움은 무겁지 않습니다. 슬퍼도 어디까지가 그것인지 경계가 있습니다. 끝난 일이니 크기가 정해져 있으니까요.
미련은 끝이 없습니다. 되돌릴 방법을 계산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산이 끝나야 감정이 멎는데, 답이 나오지 않는 계산이라 계속 돌아갑니다. 밤에 잠이 늦어지는 쪽은 대개 이쪽입니다.
떠올릴 때 머릿속에 무엇이 뜨는지 보시면 됩니다.
장면은 이미 있는 것이고 방법은 아직 없는 것입니다. 지금 떠오르는 건 어느 쪽입니까?
그리움 쪽이면 할 일이 없습니다. 이건 게으름이 아니라 정확한 판단입니다. 끝난 것에는 조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나가게 두시면 됩니다.
미련 쪽이면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계산을 끝내는 것입니다. 되돌릴 방법이 실제로 있는지 딱 한 번만 정확하게 확인하고, 없으면 없다고 적어두는 겁니다. 마음이 정리되어서 멎는 게 아니라 계산이 닫혀야 멎습니다.
그리고 방법이 실제로 있다면, 그건 미련이 아니라 아직 하지 않은 일이겠지요. 그때는 감정 문제가 아닙니다.
미련이 나쁜 감정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그걸 그리움이라고 부르면 시간이 흘러도 계산이 안 닫힙니다. 이름이 틀린 채로는 아무리 오래 두어도 정리되지 않으니까요.
두 정거장 돌아 지나가는 그 길도, 이름만 바꿔 부르면 다르게 걷게 됩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누군가가 자꾸 떠올랐다면 하나만 확인해보시죠. 뜨는 게 장면인지 방법인지.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