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영화 목록이 백 편인데 지난 반년 동안 한 편도 안 보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취미가 없는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목록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목록은 취향이고, 취미는 다른 칸입니다.
취향과 취미는 둘 다 좋아하는 것에 붙는 말입니다.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영화. 그래서 하나로 묶어 쓰이는데 가리키는 것이 다릅니다.
갈리는 것은 시간을 쓰고 있느냐입니다.
취향은 여러 개 중에서 무엇을 고를지를 정하는 기준입니다.
식당에 가면 무엇을 시킬지, 음악이 나오면 좋은지 아닌지가 바로 나옵니다. 시간이 안 듭니다. 이미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니까요.
취향은 쌓입니다. 살면서 겪은 것이 기준이 되니 나이가 들수록 뚜렷해지죠. 그래서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 취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취미는 정해진 시간을 그것에 쓰는 상태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상관없이, 실제로 몇 시간이 거기로 갑니다. 그래서 취미는 목록이 아니라 달력에서 확인됩니다.
여기서 하나 짚겠습니다. 취미는 잘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력이 아니라 쓴 시간이 이름을 정합니다.
이렇게 세어보시면 됩니다. 지난달에 그것에 몇 시간을 쓰셨습니까?
백 편의 목록이 있어도 반년이 비었다면, 그건 영화가 취향이지 취미는 아닌 것이겠지요.
이 구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취향은 나를 설명해줍니다. 어떤 사람인지 말할 재료가 되죠. 그런데 취향은 시간을 안 채웁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게 아무리 많아도 저녁이 비어 있으면 허전합니다.
반대로 취미는 나를 설명하지 못해도 시간을 채웁니다. 남들이 보기에 시시한 것이어도 그 몇 시간 동안은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되니까요.
취미가 없어서 허전하시면 할 일은 좋아하는 것을 더 찾는 게 아닙니다. 목록에 이미 있는 것 하나에 시간을 정해두는 것입니다.
목요일 저녁 한 시간처럼 자리를 정하시면 됩니다. 그 시간에 목록에서 하나 꺼내 보시면 그날부터 이름이 넘어갑니다. 새로 좋아할 것을 찾지 않으셔도 됩니다.
백 편의 목록은 이미 충분히 기시니까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좋아하는 것의 개수는 이름을 정하지 못합니다. 지난달 시간만 세어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