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쓰기에 관한 책을 빌리시던 손님이 계셨습니다. 부모님께 편지를 쓰려 한다고요. 그러고는 쓸쓸하게 덧붙이셨습니다. 말로 하면 늘 싸움이 돼서요.
가장 가까운 사이인데 말이 가장 어려운 사이. 많은 분이 그렇게 느끼시더군요.
오래된 역할이 있습니다. 부모님 앞에선 저도 모르게 아이였을 때의 말투가 나오죠. 부모님도 저를 그때처럼 대하시고요. 서로 너무 잘 압니다. 어디를 건드리면 아픈지 압니다. 그래서 작은 말에도 크게 반응하게 되죠. 걱정이 잔소리로 나옵니다. 부모님의 걱정은 대개 조언이나 지적의 모양으로 오고, 저는 그걸 간섭으로 받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쌓여 있습니다. 한꺼번에 꺼내려니 정작 중요한 말은 엉키더군요.
싸움으로 끝난 날에도 하고 싶던 말은 사라지지 않죠. 고맙다는 말, 서운했다는 말, 걱정하지 마시라는 말. 그게 쌓이면 다음 대화가 더 무거워지죠.
앞서 부모님 안부 전화가 망설여지는 마음을 다룬 글들이 있는데, 그 망설임 밑에는 대개 이 쌓인 말들이 있더군요.
니체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와 누이와는 평생 가깝고도 껄끄러운 관계였다고 전해집니다. 말년의 『이 사람을 보라』에서도 가족 이야기를 복잡한 마음으로 꺼내죠.
니체도 쉽지 않았던 겁니다. 다만 그는 그 관계까지 제 이야기의 일부로 끌어안으려 했죠. 앞서 아모르 파티를 적었는데,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제 길을 내는 일은 가족에게서 가장 어렵고, 그래서 가장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가장 가까운 자에게 가장 서툰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그 말이 무겁다는 뜻이다.
한 번에 하나만 말하십시오. 쌓인 말을 다 꺼내려 하지 말고, 오늘은 하나만요. 말 대신 글을 써 보십시오. 그 손님처럼요. 글은 끊기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걱정을 번역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 밑에 "네가 다칠까 봐"가 있는지요. 짧게 자주 하십시오. 긴 대화보다 짧은 안부가 길을 엽니다.
그 손님은 책을 반납하시며 편지를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뒤 어머니께 전화가 왔는데, 둘 다 편지 얘기는 안 하고 밥 먹었냐는 말만 했다고요. 그래도 목소리가 달랐다고 하시더군요.
부모님과의 말은 앞으로도 자주 엇나갈 겁니다. 그래도 저는 하고 싶던 말을 버리지 않고, 말이 막히면 글로, 글이 막히면 짧은 안부로 다른 길을 내어 건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