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오신 날 삼십 분을 쉬지 않고 얘기하셨던 분이 있었습니다. 다음에 오셔서는 민망하다고 하시더군요.
원래 말이 많은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 자리에서만 그렇게 되신 거죠.
이 버릇의 정체는 대개 이쪽입니다. 할 말이 많아서가 아니라 조용해지는 몇 초가 불편해서 채우는 거죠.
낯선 사람과 있으면 그 몇 초가 훨씬 길게 느껴집니다. 상대가 지루해하는 건 아닌지, 내가 재미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이니까요. 앞서 남의 눈치를 보는 성격을 적었는데, 그게 말수로 나오는 형태고요.
그래서 말을 하는 동안은 편합니다. 끝나고 나서 민망해지죠.
가까운 사이에서는 이게 잘 안 나옵니다. 조용해져도 아무 일이 안 일어난다는 걸 아니까요.
낯선 자리에는 그 확신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가 아직 안 정해져 있죠. 그 빈칸을 말로 채우려는 겁니다.
그리고 말을 하다 보면 자기 얘기가 평소보다 많이 나갑니다. 앞서 자기 얘기를 못 하는 성격을 적었는데, 낯선 자리에서 오히려 술술 나오는 분도 계시죠. 다시 안 볼 사람이라는 계산이 깔려서요.
말수를 세면서 참으시면 더 어색해집니다. 방법은 반대쪽에 있어요.
물어보십시오. 질문 하나를 던지면 그 몇 초를 상대가 채웁니다. 내가 안 채워도 되죠. 조용한 몇 초를 한 번만 버텨보십시오. 대개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그걸 한 번 겪으시면 다음부터 덜 급해지고요. 할 일이 있는 자리를 고르십시오. 마주 앉아 얘기만 하는 자리보다 뭘 같이 하는 자리가 훨씬 편합니다.
이미 말을 많이 하신 다음이라면요.
상대는 대개 기억을 못 합니다. 내가 되새기는 만큼 상대가 곱씹지는 않죠. 앞서 지나간 말을 곱씹는 버릇을 적었는데 같은 자리입니다.
그리고 말이 많았던 게 손해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어색함을 먼저 깬 사람이 나였던 거니까요.
침묵을 못 견디는 사람은 말이 많은 게 아니라, 빈자리를 혼자 메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오셔도 한참 조용히 계십니다.
말수가 준 게 아니라 여기가 낯설지 않아지신 것이더군요. 성격이 바뀐 게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