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 보면 큰 문파 소개에 이런 말이 붙어. "무림의 태산북두."
소림이 그렇고, 무당이 그래. 나는 처음에 태산이라는 산에 있는 문파인 줄 알았어. 아니더라. 비유였어.
태산북두는 태산이랑 북두칠성을 합친 말이야.
태산은 중국에서 예부터 높고 우러러보는 산으로 꼽혀온 데래. 북두칠성은 밤하늘에서 길잡이가 되는 별이고. 그러니까 둘을 합치면 다들 우러러보고 기준으로 삼는 존재라는 뜻이 돼.
객잔에서 이 얘기를 했더니 손님 하나가 창밖을 보더니 북두칠성을 손가락으로 짚어줬어. 국자 모양이래. 그날 처음 제대로 봤어.
이 말은 무협이 만든 게 아니래. 옛날 역사책에서 학문이 높은 사람을 두고 학자들이 태산북두처럼 우러러봤다고 쓴 데서 왔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원래는 존경받는 사람한테 쓰던 말이야. 무협은 그걸 문파한테 가져왔어. 무림에서 다들 기준으로 삼는 문파라는 뜻으로.
무협에서 태산북두는 대개 소림이랑 무당이야. 오래되고, 크고, 정파의 중심이니까.
근데 재밌는 게 있어. 태산북두라는 말이 붙은 문파는 대개 잘 안 움직여. 무림맹은 왜 늘 무능하냐는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비슷한 거야. 우러러보는 자리에 있으면 함부로 못 움직이거든. 움직이면 그게 곧 무림 전체의 판단이 되니까.
그래서 무협에서 태산북두 문파가 직접 나서는 장면은 대개 큰일이야. 그 문파가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사건이 되는 거지.
나는 이 말에서 북두 쪽이 더 좋아. 태산은 우러러보는 거지만, 북두칠성은 길을 찾게 해주는 거잖아.
밤길 잃은 사람이 북두칠성 보고 방향을 잡듯이, 무림 사람들이 길을 잃으면 그 문파를 본다는 거야. 존경보다 기준에 가까운 말이지.
네가 아는 태산북두 하나 말해줘. 무협 인물이어도 되고 동네 어른이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