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한 문단 안에서 의혹이라고 했다가 정황이라고 했다가, 마지막 줄에서는 사실처럼 적어두었더군요.
세 이름은 크기가 다른 말이 아닙니다. 서 있는 단계가 다른 말입니다. 섞어 쓰면 읽는 사람이 지금 어디쯤인지를 알 수 없게 됩니다.
의혹은 아직 답이 없는 물음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게 아니냐, 그 돈이 그리로 간 게 아니냐. 물음의 형태를 하고 있고 답은 없습니다. 근거가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있는 것은 근거가 아니라 물음을 만든 이유입니다.
의혹 단계에서 확실한 것은 하나뿐입니다. 누군가 그 물음을 제기했다는 사실이지요.
정황은 확인된 사실이 여러 개 모인 상태입니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시간에 통화가 있었다, 그 계좌가 그때 열렸다. 하나하나는 그것만으로 결론이 안 되는데 나란히 놓으면 방향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정황은 물음이 아니라 재료입니다. 아직 답은 아니지만 답을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놓인 상태죠.
감으로 하면 안 됩니다. 세어보시면 됩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이 숫자가 안 나오면, 그 기사는 단계를 안 알려주고 있는 겁니다.
섞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의혹은 약하고 사실은 강한데, 정황이 그 사이에 있어서입니다.
의혹만으로는 무게가 안 실리고 사실이라고 하면 책임이 따릅니다. 그래서 가운데 말이 자주 쓰이고, 쓰이는 동안 앞뒤가 흐려집니다. 읽는 쪽에서는 정황이라는 말을 보면 이미 반쯤 확정된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니까요.
의혹 단계에서 할 일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답이 없으니 판단할 재료가 없습니다.
정황 단계에서 할 일은 세는 것입니다. 사실 몇 개가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결론은 아직 아닙니다.
세 단계를 갈라두면 소식을 볼 때 마음이 덜 흔들립니다. 지금 화를 낼 자리인지, 기다릴 자리인지가 나뉘니까요. 이름을 정확히 부르면 그 소식의 크기도 정확해집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의혹인지 정황인지 헷갈리실 때는 확인된 사실의 개수만 세어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