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마치고 들어오신 날, 마침 택배 기사가 문 앞에 있었다고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기사가 "고생 많으시죠" 한마디 하고 갔는데, 그 뒤로 현관에 한참 서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그 분은 자기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름이 둘이라서 그렇습니다. 울컥함과 서러움입니다.
울컥함과 서러움은 한 번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이 막히고, 눈이 뜨거워지고, 말이 잠깐 안 나옵니다. 같이 오니 하나로 여기시는 거죠.
울컥함은 그 순간 치밀어 오르는 것이고, 서러움은 그 밑에 쌓여 있던 것입니다.
울컥함은 어떤 계기에 감정이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상태입니다.
감정의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화가 나서도 울컥하고, 고마워서도 울컥하고, 슬퍼서도 울컥합니다. 울컥함은 감정 자체라기보다 감정이 올라오는 방식에 붙은 이름이니까요.
그래서 울컥함은 짧습니다. 계기가 지나가면 대개 가라앉습니다.
서러움은 순간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감정입니다.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여러 날에 걸쳐 쌓여 있을 때 생깁니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작은 계기가 오면 울컥함의 모양으로 한꺼번에 올라오죠.
택배 기사의 한마디가 계기였고, 쌓여 있던 것은 야근이 이어진 몇 주였던 겁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 분은 한가한 날이었으면 "네, 감사합니다" 하고 끝났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거운 쪽은 서러움이겠지요.
울컥함만 있었다면 지나가길 기다리시면 됩니다. 순간의 일이니까요.
서러움이 있었다면 계기가 아니라 쌓인 쪽을 보셔야 합니다. 무엇이 여러 날 대접받지 못했는지가 그 감정의 실제 주소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올라온 것은 같습니다. 그 밑에 쌓인 것이 있는지만 보시죠.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