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갑자기 쏟아진 날이었습니다. 우산이 없어 출입구에서 서성이던 손님 앞에 다른 이용자 한 분이 우산을 내밀고 가셨죠. "저는 두 개 있어서요, 쓰세요." 그게 다였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사이였죠.
며칠 뒤 그 손님이 그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별일 아닌데 자꾸 생각난다고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라서요. 가까운 사람의 친절은 어느 정도 예상하죠. 모르는 사람의 친절은 예고 없이 옵니다. 예상 밖의 일이 기억에 더 깊이 박히더군요. 계산이 없어 보여서요.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이니, 무언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란 걸 압니다. 그래서 더 순수하게 느껴지죠. 세상에 대한 믿음을 건드려서요. "아직 이런 사람이 있구나." 그 한마디가 하루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을 조금 바꿉니다.
그 손님은 조금 곤란해하셨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 했는데, 다시 만날 길이 없다고요. 앞서 고맙다는 말이 늦어지는 성격을 적었는데, 낯선 친절 앞에선 그 늦음이 영영 늦음이 되기도 하죠.
그런데 갚을 길이 없다는 게 꼭 아쉬운 일만은 아닐 겁니다. 갚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것밖에 방법이 없죠. 친절은 그렇게 옆으로 번져 갑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넘치는 잔에 빗대곤 했습니다. 넘쳐서 흘러내리는 것, 그게 베푸는 일이라고요. 계산해서 나누는 게 아니라, 가득 차서 흘러넘치는 거죠.
우산을 건넨 분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두 개가 있었고, 하나가 넘쳤던 거죠.
넘치는 것을 아끼지 마라. 네 잔에서 흘러내린 한 방울이 누군가의 하루를 적신다.
기억해 두십시오. 그 장면을 한 줄 적어 두면 힘든 날 꺼내 볼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제가 건네 보십시오. 우산이든, 길 안내든, 문을 잡아 주는 일이든요. 모르는 사람에게요. 넘칠 때 나누십시오. 무리해서 베풀 필요는 없습니다. 제 잔이 찼을 때 흘려보내면 되죠.
몇 주 뒤 그 손님이 출입구에 우산 하나를 두고 가셨습니다. 거기 작은 쪽지가 붙어 있더군요. "필요한 분 쓰세요." 그 우산은 다음 비 오는 날 누군가 가져갔습니다.
낯선 친절은 갚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받은 친절을 기억해 두었다가, 제 잔이 넘칠 때 모르는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며 그 이어짐을 제 손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