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 책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걷는 할머니 손님이 계셨습니다. 책을 펼치지 않고 작게 소리 내어 무언가를 외우고 계셨죠. 여쭈니 다음 주에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연습하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하신다고요.
그 손님 말로는, 일정한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 시설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활동이라고 합니다. 여러 해 전부터 이어져 온 사업이라고 하시더군요. 뉴스에서도 종종 소개된다고요.
가장 큰 특징은 책을 읽어 주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겁니다. 책 없이, 아이들 눈을 보며 할머니의 목소리로요. 그래서 이야기를 통째로 외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책보다 얼굴을 봅니다. 그림책을 읽어 줄 때는 아이들 눈이 책에 가 있는데, 이야기를 들려주면 할머니 얼굴만 본다고요. 같은 이야기도 매번 달라집니다. 아이들 반응에 따라 목소리도, 쉬는 자리도 바뀐다고 하셨죠. 아이들이 다음 이야기를 조릅니다. 끝나면 "또, 또" 한다고요. 그 소리에 일주일을 산다고 웃으셨습니다. 외우는 게 제일 힘듭니다. 그래서 도서관에 와서 옛이야기 책을 여러 번 읽고, 걸으며 소리 내어 연습하신다고요.
듣고 있자니 오래된 장면 하나가 떠오르더군요. 책이 생기기 전, 이야기는 사람의 입으로 건너왔다는 거죠.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이 다시 그다음 아이들에게.
앞서 소리 내어 읽는 효과와 책 읽어주는 봉사를 적었는데, 이야기 할머니는 그보다 더 오래된 방식이더군요. 책은 그 목소리를 붙잡아 두려고 생긴 것인지도 모릅니다. 앞서 사람책 도서관을 적었는데, 이야기 할머니들은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사람책이었습니다.
종이에 적히기 전에 이야기는 목소리였다. 목소리로 건너간 이야기는 듣는 아이 안에서 다시 책이 된다.
그 손님은 그날 옛이야기 책 세 권을 빌려 가셨습니다. 이번 주엔 호랑이가 나오는 이야기를 하신다고요. 아이들이 무서워하면서도 제일 좋아한다며 웃으셨죠.
이야기는 책 속에만 있지 않죠. 저는 그 목소리들이 이어질 수 있도록, 이야기를 외우러 오는 분들을 위한 옛이야기 서가를 정성껏 채워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