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퇴근길이었어요. 횡단보도 앞에서 고개를 드니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더라고요.
신호가 바뀌었는데 건너지 않았어요. 한 번 더 바뀔 때까지 그냥 서 있었네요.
그런데 옆에 교복을 입은 학생 하나도 안 건너고 있었어요.
저랑 같은 쪽 하늘을 보고 있었지요. 서로 말은 안 했지만 둘 다 같은 이유로 서 있다는 걸 알 것 같았어요. 신호가 두 번째로 바뀌고 나서야 둘이 거의 동시에 건넜네요.
노을을 보는 동안 머릿속이 이상하게 조용했어요.
그날 회사에서 있었던 일, 저녁에 뭘 먹을지, 내일 해야 할 일 같은 게 잠깐 다 멀어졌지요. 그냥 붉은 게 점점 보라색으로 바뀌는 걸 보고 있었어요. 뭘 바라거나 걱정하지 않는 몇 분이었군요.
아름다운 것을 보는 동안, 사람은 잠깐 자기 사정을 내려놓는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순간을 특별하게 봤다고 하지요.
늘 무언가를 바라고 쫓는 마음이 아름다운 걸 볼 때 잠깐 멈춘다고요. 그때만큼은 괴로움에서도 조금 풀려난다는 얘기였어요. 처음 읽을 땐 너무 거창하게 들렸는데, 횡단보도 앞에서는 꽤 맞는 말 같더라고요.
물론 그 순간은 금방 끝나요.
노을은 몇 분이면 사라지고, 신호는 다시 바뀌고, 휴대폰엔 알림이 와 있지요. 건너고 나면 원래 하루로 돌아가고요. 그래도 그 몇 분이 있었다는 게 저녁 내내 조금 남아 있었어요.
찍을까 하다가 그냥 봤어요.
찍으면 화면을 보느라 정작 하늘을 덜 볼 것 같았지요. 사진은 없지만 그날 노을 색은 아직 기억나요. 붉은색 아래쪽에 옅은 주황이 깔려 있었네요.
바쁜 날엔 하늘을 볼 틈이 없지요.
그래도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붉은 하늘이 있으면, 신호 한 번쯤은 그냥 보내도 괜찮겠지요. 그 몇 분이 하루를 바꿔주진 않지만 하루를 조금 견딜 만하게는 해주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