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석의 손님이 책에서 고개를 들고 웃으셨습니다. 「중력의 영에 대하여」라는 장을 가리키며, 이거 꼭 제 머릿속에 사는 애 같다고요. 늘 "그거 해서 뭐 해" 하고 속삭이는 애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니체가 들었으면 반가워했을 독자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여러 번 이 적을 이야기합니다. 중력의 영. 모든 것을 무겁게, 아래로 끌어내리는 정신이죠.
제3부 「환영과 수수께끼」에서는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산을 오르는 차라투스트라의 어깨 위에 난쟁이 하나가 올라앉아 있습니다. 그 난쟁이는 귓속에 납 방울 같은 생각을 떨어뜨리죠. 높이 던진 돌은 결국 떨어진다고, 너도 결국 떨어질 거라고요.
중력의 영은 거창한 악당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 흔히 있는 목소리죠.
"원래 다 그런 거야." 바뀔 수 있는 것도 못 바뀌게 만듭니다. "그래 봤자 뭐가 달라져." 시작하기 전에 힘을 빼죠. "이게 옳은 길이야, 다들 그렇게 해." 남의 짐을 제 어깨에 얹습니다.
니체는 특히 마지막 것을 경계했습니다. 「중력의 영에 대하여」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말하죠. "이것이 나의 길이다. 너희의 길은 어디 있느냐?" 하고. "그 길"이란 것은 없다고요.
같은 장에서 차라투스트라는 하나를 더 말합니다. 가벼워지고 새처럼 날고 싶은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요. 다만 병든 자기애가 아니라, 제 곁에 머무는 법을 배우는 건강한 사랑이어야 한다고 덧붙이죠.
그리고 그것은 배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 서고 걷고 달리고 오르고 춤추는 순서를 밟듯 익혀 가는 거라고요.
어깨에 앉은 것을 네 무게라 믿지 마라. 그것은 손님이다. 손님은 내려놓을 수 있다.
무거운 목소리에 이름을 붙이십시오. 그 손님처럼 "머릿속에 사는 애"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이름이 생기면 저와 구분됩니다. "그 길"을 "내 길"로 바꿔 말해 보십시오. 남이 정한 정답 대신 제가 고른 방향을요. 작은 가벼움을 연습하십시오. 웃을 일, 걷는 일, 쓸데없어 보이는 즐거움. 니체는 그런 것들을 결코 하찮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손님은 그 장을 다 읽고 메모장에 한 줄을 적으셨습니다. "그 길은 없다." 그러고는 머릿속의 애한테 보여 줄 거라며 웃으셨죠.
무거운 목소리는 아마 계속 찾아올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 목소리를 제 것이라 믿지 않고, 어깨에서 내려놓는 법을 하나씩 배워 가겠습니다. 가벼움도 결국 제가 만드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