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을 드시다가 유리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더 가라앉으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혼자 먹는 것 자체는 괜찮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순간 달라졌죠. 그때 이름이 넘어간 겁니다.
서글픔과 처량함은 둘 다 마음이 아래로 내려가는 상태입니다.
둘 다 눈물이 날 것 같고, 둘 다 혼자 있을 때 커집니다. 그래서 하나로 쓰이는데, 보는 곳이 다릅니다.
서글픔은 상황을 보고 처량함은 나를 봅니다.
서글픔은 그 일이 안타까워서 오는 감정입니다.
잘 안 풀렸거나, 애쓴 것이 헛돌았거나,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을 봤을 때죠. 대상이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서글픔은 나를 깎지 않습니다. 그 일이 슬픈 것이지 내가 초라한 것은 아니니까요.
처량함은 그 일을 겪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일 때 옵니다.
시선이 나에게 돌아옵니다. 그것도 밖에서 보는 눈으로요. 유리에 비친 모습을 본 순간이 그 자리겠지요.
그래서 처량함은 나를 깎습니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내 평가가 내려가는 겁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혼자 먹는 것은 괜찮은데 혼자 먹는 내 모습이 걸리셨으면 뒤쪽입니다.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처량함은 대개 밖에서 보는 시선이 들어올 때 생깁니다. 남들이 이걸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자리요.
그런데 그 시선은 대개 실제 남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기준이죠. 그래서 아무도 안 보는 자리에서도 처량해질 수 있습니다.
서글픔 쪽이면 할 일은 그대로 두시는 것입니다. 상황이 슬픈 것이니 지나갑니다.
처량함 쪽이면 할 일은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나를 보고 있는 눈이 누구 것인지 한 번 물어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누가 보고 있지 않으면 그 판정은 내가 내린 겁니다. 내린 사람이 나면 거둘 수도 있겠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가라앉은 것은 같습니다. 무엇이 슬픈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