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이야기를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같은 칸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고요. 그러다 창에 비친 자기 모습도 똑같다는 걸 알아채셨답니다.
그 분은 그 순간 슬펐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쭤보니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감정은 슬픔보다 비애에 가깝습니다.
비애와 슬픔은 둘 다 마음이 가라앉고 아픈 감정입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말이 줄고, 한동안 멍해집니다. 아프다는 점이 같으니 슬픔이라는 말 하나로 부르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슬픔은 특정한 일이나 잃은 것에 붙는 감정이고, 비애는 나와 사람들이 놓인 처지 자체를 보며 드는 깊은 슬픔입니다.
슬픔은 대개 이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 떠났고, 무엇을 잃었고, 어떤 일이 잘못되었습니다. 원인이 되는 일이 있죠. 그래서 슬픔은 그 일과 함께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집니다. 원인이 분명한 만큼 끝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슬픔과 서러움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대접이 섞였느냐로 갈랐고요.
비애는 하나의 일이 아니라 사는 모습 전체를 볼 때 옵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인 지하철 칸, 그 안의 나. 무엇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 한꺼번에 보인 거죠. 그래서 비애는 원인을 하나로 짚기 어렵습니다. 무엇 때문이냐고 물으면 "그냥"이라는 답이 먼저 나옵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지하철의 그 분은 "그냥"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한 단어가 이미 이름을 알려준 셈이겠지요.
슬픔이라고 부르시면 원인을 찾게 됩니다. 찾지 못하면 내가 이상한가 싶어지죠.
비애라고 부르시면 원인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 처음부터 보입니다. 이유 없이 가라앉은 것이 아니라 넓은 것을 한꺼번에 본 것이라는 것도요. 그러면 그 감정에 맞는 크기가 생깁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같습니다. 원인을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지만 보시죠.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