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음료를 하나 사 왔네요. 제가 몇 달 전에 한 번 말한 거였어요.
말한 저도 잊고 있었는데 그쪽은 기억하고 있더군요. 그날 저는 그 컵을 한참 들고 있었더라고요.
값으로 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겠지요.
그런데 그날 저녁까지 그 생각이 났어요. 큰 도움을 받았을 때보다 더 오래 남더라고요. 이상한 일이지요.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이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 때 비로소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왜 그렇게 오래 남나 생각해봤네요.
기억한다는 건 그때 실제로 듣고 있었다는 뜻이잖아요. 대화하는 척한 게 아니라 진짜로 들었다는 증거인 겁니다. 그 증거가 몇 달 뒤에 도착한 셈이군요.
말하는 동안에는 알 수 없는 걸 나중에 확인받는 거니까 더 크게 오는 거겠지요.
부끄럽지만 저는 그걸 잘 못 합니다.
들을 때는 열심히 듣는데 며칠 지나면 흐려져요. 나중에 그 사람이 다시 그 얘기를 하면 그제야 아, 하고 떠오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두 번 말한 게 되는걸요.
그래서 요즘은 좀 적어둡니다.
거창한 건 아니고 메모장에 이름 옆에 한 줄씩이에요. 무슨 음료를 좋아한다든가 어디가 불편하다든가 하는 것들요. 처음엔 계산적인가 싶어 좀 그랬는데 몇 번 해보니 아니더라고요.
잊어버릴 걸 아니까 붙잡아두는 것뿐인걸요. 마음이 있어도 기억은 새니까요.
기억한 걸 꺼낼 때는 티를 안 내는 편이 낫습니다.
내가 이걸 기억했다고 말하면 받는 쪽이 갚아야 할 것 같아지거든요. 그냥 슬쩍 놓아두는 정도가 제일 편한걸요. 저한테 음료를 사 온 사람도 아무 말 안 했습니다. 그게 좋았어요.
오늘 누가 별말 아닌 걸 기억해줘서 마음이 흔들리셨다면, 그건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날 그 사람이 실제로 듣고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그런 사람이 하나쯤 있으면 흐린 날이 조금은 견딜 만해지는걸요. 저는 요즘 그 컵을 아직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