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석에 앉은 손님이 책을 펼쳐 두고 휴대폰을 보고 계셨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 고개를 드시더니 한숨을 쉬고 일어나시더군요. 책은 한 쪽도 안 넘어가 있었습니다. 나가시면서 그러셨죠. 보고 나니까 괜히 더 피곤하다고.
그 피곤함에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끝이 없습니다. 책에는 마지막 쪽이 있지만 화면은 계속 이어지죠. 멈출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니 그만큼 힘이 듭니다. 남의 좋은 장면만 봅니다. 여행, 맛있는 음식, 축하할 일. 다들 고르고 고른 하루를 올리죠. 그걸 연달아 보면 제 하루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더군요. 마음이 쉴 틈이 없습니다. 웃긴 것, 화나는 것, 부러운 것이 몇 초 간격으로 바뀝니다. 감정이 그 속도를 따라가느라 지치는 거죠.
앞서 남과 자꾸 비교하게 되는 마음을 적었습니다. SNS는 그 비교를 아주 빠르게, 아주 많이 하게 만드는 자리겠죠.
게다가 비교 대상이 친구 한 명이 아닙니다. 수십 명의 가장 좋은 순간을 모아 놓고 제 평범한 오후와 대 보는 셈이죠. 그러니 이길 수가 없습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시장의 파리들에게서 달아나라고 합니다. 시끄러운 무리 속에서 쏘이고 또 쏘이다 보면 제 생각을 잃는다는 거죠. 그러고는 고독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SNS를 끊으라는 말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다만 잠깐씩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는 충분하겠죠.
남의 소리로 귀를 채운 자는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하루에 한 번은 문을 닫아라. 그 고요 속에서 너는 다시 너를 만난다.
보는 시간을 정해 두십시오. 끝이 없는 것에는 제가 끝을 만들어 줘야 하죠. 본 다음 무엇이 남았는지 물어보십시오. 아무것도 안 남았다면, 그건 쉰 게 아니라 흘려보낸 겁니다. 제 하루를 한 줄 적어 보십시오. 남의 하루 대신 제 하루를 들여다보는 연습이죠. 화면 대신 종이를 한 장 넘겨 보십시오. 끝이 있는 것을 끝까지 가 보는 경험이 의외로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며칠 뒤 그 손님이 다시 오셨습니다. 이번엔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앉으시더군요. 한 시간 뒤 일어나실 때는 책이 서른 쪽쯤 넘어가 있었습니다. 덜 피곤하다고 하셨죠.
화면은 계속 남의 하루를 보여 줄 겁니다. 저는 그걸 잠깐 덮고, 제 하루를 제 손으로 채우는 시간을 따로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