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마다 도서관에 오시는 손님이 계셨습니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삼십 분쯤 책을 보다 가셨죠. 어느 날 대출하면서 말씀하시더군요. 입사한 지 두 달 됐는데, 아직 점심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고요. 같이 들어온 동기들은 벌써 다 친해졌는데.
그 말끝에 조금 지친 기색이 묻어 있었습니다.
새 자리에 빨리 섞이는 사람이 있고, 오래 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는 없겠죠.
적응이 느린 분들에게는 대개 이런 면이 있더군요.
관찰부터 합니다. 분위기, 말투, 규칙을 먼저 파악하고 나서야 움직이죠. 겉으로 친한 것이 어렵습니다. 깊이 알기 전에 가까운 척하는 게 불편합니다. 혼자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들 속에 오래 있으면 기운이 빠지니, 점심시간 같은 틈에 혼자 있고 싶어지죠.
그 손님이 점심마다 도서관에 오신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겁니다.
비교가 가장 아픕니다. 같이 들어온 사람들이 벌써 웃으며 어울리는 걸 보면, 제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죠.
그런데 섞이는 속도와 자리 잡는 깊이는 다를 수 있습니다. 빨리 친해진 무리가 오래가지 않는 일도 흔하고, 천천히 쌓은 관계가 더 단단한 일도 많습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무를 빌려 말합니다. 높이, 밝은 곳으로 자라려는 나무일수록 뿌리는 더 깊이, 어둠 속으로 뻗어 간다고요.
새 자리에서 겉도는 시간은 어쩌면 그 뿌리를 내리는 시간일 겁니다. 땅 위로는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아래에선 무언가 자라고 있는 거죠.
빨리 자란 것은 바람에 먼저 흔들린다. 천천히 뿌리내린 것은 바람을 오래 견딘다.
한 사람만 정하십시오. 무리 전체에 섞이려 하기보다,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한 사람을 찾는 게 빠릅니다. 일로 먼저 가까워지십시오. 업무에 대해 묻는 건 어색하지 않죠. 그 질문이 대화의 문이 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지키십시오. 그 시간이 있어야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힘이 생깁니다. 석 달은 기다려 보십시오. 느린 분들에게 두 달은 아직 이른 때일 겁니다.
몇 주 뒤 그 손님이 점심시간에 다른 분과 함께 오셨습니다. 옆 팀 사람인데, 둘 다 책을 좋아해서 같이 왔다고요. 같은 자리 옆에 나란히 앉으셨죠.
남보다 늦게 섞인다고 늦은 건 아닙니다. 저는 제 속도대로 뿌리를 내리고, 그렇게 내린 뿌리로 제 자리를 만들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