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대에서는 늘 상냥하시던 손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열람실 밖에서 가족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으시며 퉁명스럽게 말씀하시더군요.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쉬셨습니다. 또 그랬네요. 밖에서는 안 그러는데 집에만 오면 이렇다고요.
밖에서 다 써 버렸습니다. 하루 종일 친절하게 버티느라 기운이 바닥나면, 집에 와선 남은 게 없죠.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가까운 사람은 제가 조금 날카로워도 곁에 있을 거라 여기니까요.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밖에서 참은 감정이 가장 안전한 자리에서 터지는 거죠. 기대가 큽니다. 앞서 곁에 있는 사람을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을 적었는데, 가까울수록 "당연히 이해해 주겠지" 싶더군요.
밖에서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스쳐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족이나 오랜 친구는 가장 오래 곁에 있는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에게 가장 지친 얼굴만 보여 주게 되는 건 아이러니입니다.
앞서 부모님과 대화가 어려운 마음을 적었는데, 그 엇나감의 뿌리 가운데 하나가 여기 있기도 합니다.
앞서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 뜻을 적으며, 니체가 가장 가까운 것들에 좋은 이웃이 되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먼 것에 마음을 쓰느라 가까운 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요.
가까운 사람도 그 가장 가까운 것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함부로 대하기 쉬운 것이요.
낯선 이에게 건넨 친절의 반만이라도 곁의 사람에게 남겨 두어라. 그 반쪽이 집을 지킨다.
집에 들어가기 전 잠깐 멈추십시오. 현관 앞에서 숨을 한 번 고르는 겁니다. 밖의 하루를 내려놓는 시간이죠. 기운을 조금 남겨 두십시오. 밖에서 다 쓰지 않도록요. 날카로웠다면 바로 사과하십시오. "아까 미안, 피곤해서 그랬어." 짧은 말로도 충분합니다. 지쳤다고 먼저 말하십시오. "오늘 좀 지쳤어"라고 말해 두면, 상대도 이해할 준비를 하죠.
그 손님은 그날 나가시기 전에 다시 전화를 거셨습니다. 짧게 미안하다고 하시더군요. 다음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요즘은 현관 앞에서 숨을 한 번 쉬고 들어간다고요. 그것만으로도 꽤 다르다고 하셨죠.
밖에서 지친 날은 또 올 겁니다. 그래도 저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남겨 둘 친절을 아껴 두고, 그들에게 지친 얼굴만이 아니라 다정한 얼굴도 건네는 쪽을 고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