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이 덥다고 먼저 말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민하다는 말을 들으셨고, 그날 내내 말을 줄이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같은 분이 다른 자리에서는 섬세하다는 말을 들으십니다. 사람이 바뀐 게 아닙니다. 부르는 이름이 바뀐 것입니다.
두 말은 칭찬과 흉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먼저 하나를 정리해야 합니다. 예민함과 섬세함은 감각의 세기로 갈리지 않습니다.
둘 다 남들이 못 느끼는 것을 느낍니다. 온도가 높은 것, 말투가 달라진 것, 자리가 어색해진 것을 먼저 압니다. 그 능력은 동일합니다.
갈리는 것은 그 감각이 향하는 방향입니다.
느낀 것이 내 불편으로 도착하면 예민함입니다.
덥다, 시끄럽다, 저 말이 거슬린다. 감각의 끝에 내가 있습니다. 그래서 표현하면 요구가 됩니다. 온도를 낮춰달라, 소리를 줄여달라. 요구 자체는 정당한데, 듣는 쪽에서는 그것만 보입니다.
같은 것을 느끼고 그 끝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섬세함입니다.
저 사람이 추워 보인다, 저 사람이 아까 그 말에 굳었다. 표현하면 배려가 됩니다. 같은 감각인데 도착지가 달라서 이름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섬세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감각을 밖으로 돌린 사람일 뿐입니다.
느낀 것을 말로 옮겨보시면 됩니다.
주어가 나면 앞쪽, 주어가 상대면 뒤쪽입니다. 지금 떠오른 문장은 어느 쪽입니까?
예민함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나쁘게 들리는 것입니다.
내 불편을 말하면 상대는 조치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듣는 쪽에 일이 생깁니다. 반면 섬세함은 상대에게 일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하게 들립니다.
이건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 일이 생기느냐의 문제입니다. 예민하다는 말을 자주 들으신다면, 감각이 과한 게 아니라 그 감각을 자주 요구로 바꾸고 계신 것일 수 있겠지요.
예민함 쪽이면 할 일은 표현의 순서를 바꾸는 것입니다. 요구를 먼저 내놓지 말고 사실을 먼저 놓으시면 됩니다. "덥습니다"와 "온도 좀 낮춰주세요"는 상대가 받는 무게가 다릅니다.
섬세함 쪽이면 할 일은 반대입니다. 남만 살피다 보면 자기 불편은 끝까지 말하지 않게 되니까요. 그건 배려가 아니라 누락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예민하다는 말을 들으셨다면 그대로 받지 마시죠. 그 감각이 어디로 갔는지만 보시면 됩니다.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