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다닌 회사에서 "우리 팀이 이 제품 만들었다"는 말을 할 때마다 어깨가 펴졌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은퇴하고 명함이 없어지자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셨다고요. 그 분은 자존감이 무너졌다고 하셨습니다. 흔들린 것은 자존감보다 자긍심 쪽이었습니다.
자긍심과 자존감은 둘 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며 나를 지키는 마음입니다.
어깨가 펴지고,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나를 소개하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갑니다. 나를 높게 여긴다는 점이 같으니 섞어 쓰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자긍심은 내가 해낸 일이나 내가 속한 곳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무엇을 이뤘든 이루지 못했든 나라는 사람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긍심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 제품, 그 팀, 그 회사의 이름이 근거였습니다. 내가 한 일이 자랑스러우니 나도 자랑스러운 거죠. 그래서 자긍심은 그 근거가 사라지면 흔들립니다. 명함이 없어진 날이 그날이었습니다.
자존감에는 근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룬 것이 없어도, 자리를 잃어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마음이죠. 그래서 자존감은 명함이 바뀌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기소개가 직함이 아니라 사람으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자존감과 자신감,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자긍심과의 경계만 보겠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자긍심이 흔들린 것을 자존감이 무너졌다고 부르시면 나 전체가 무너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무너진 것은 명함 한 장이었겠지요.
자긍심이 흔들렸다면 20년의 일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이룬 것은 과거형이 되어도 남습니다.
자존감을 지키고 싶으시다면 직함 없이 나를 소개하는 문장을 하나 만들어 보시면 됩니다. 그 문장이 생기면 흔들린 것의 크기가 보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나를 지키는 것은 같습니다. 이룬 것을 빼고도 남는지만 보시죠.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