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서는 한 발도 안 물러서셨습니다. 그러다 자리가 파하고 혼자 되시자마자 자기가 한심하다고 하셨지요.
같은 사람인데 십 분 만에 판정이 뒤집혔습니다. 두 개가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은 관객이 있어야 작동합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걸려 있어서, 보는 사람이 없으면 켜질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존심은 지키는 대상이 내가 아니라 남의 눈에 비친 나입니다.
자존감은 관객이 없어도 남습니다. 혼자 있을 때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걸려 있습니다. 아무도 안 볼 때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지요.
그래서 둘은 같이 갈 수도 있고 정반대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구조를 보면 자연스럽습니다. 안에 확신이 있으면 밖에서 덜 지켜도 됩니다.
내가 나를 이미 인정하고 있으면 남이 뭐라 하든 크게 안 흔들립니다. 굳이 그 자리에서 이겨야 할 이유가 줄어들지요.
반대로 안이 비어 있으면 밖에서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지는 것을 못 견디고, 사과를 못 하고, 물러서면 무너질 것 같습니다. 자존심이 세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여유가 없는 상태일 때가 많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지금 그 마음을 두고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벌어진 일이어도 똑같이 화가 났겠습니까?
이 질문이 편리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관객의 유무만 바꿔서 보게 하니까요.
여기서 자주 오해가 생깁니다. 자존심은 나쁜 것이니 버리라는 말로 들으시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자존심은 사회적 자리를 지키는 기능이 있습니다. 함부로 대해지는 것을 막아주지요. 다만 그것 하나만 있으면 사람이 계속 관객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관객이 없는 밤에는 남는 게 없으니까요.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또 있습니다. 남 앞에서 이겨두면 나중에 혼자 있을 때도 든든할 거라 기대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둘은 통장이 다릅니다. 한쪽에 넣는다고 다른 쪽이 안 채워지겠지요.
자존심 쪽이면 할 일은 그 자리에서 이기는 게 아닙니다. 관객을 빼고 다시 판정하는 것입니다. 관객을 뺐더니 별일이 아니면 이긴들 남는 게 없습니다.
자존감 쪽이면 할 일은 사람들 앞이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에 있습니다. 혼자일 때 나에게 하는 말이 곧 자존감의 잔고니까요. 남 앞에서 아무리 세게 서도 그 잔고는 안 늘어납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화가 났던 일이 있으시면 관객을 빼고 다시 세워보시죠. 남으면 자존감이고, 사라지면 자존심입니다.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