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학예회에 회사 일 때문에 늦게 도착하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마지막 인사만 보셨다고요.
그날 밤 "그때 반차를 낼걸" 하셨는데, 어느새 "나는 왜 늘 이 모양이지"로 말이 바뀌었답니다. 앞의 말은 후회이고, 뒤의 말은 자책입니다. 한밤중에 이름이 바뀐 겁니다.
자책과 후회는 둘 다 지난 일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마음입니다.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르고, 마음이 무겁고,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괴롭다는 점이 같으니 섞어 쓰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후회는 그때 다르게 했으면 좋았을 선택을 아파하는 것이고, 자책은 그 일을 한 나 자신을 탓하고 나무라는 것입니다.
후회는 선택을 향해 있습니다.
반차를 냈으면 됐을 텐데, 일찍 나왔으면 됐을 텐데. 후회는 바뀔 수 있었던 한 지점을 봅니다. 그래서 후회에는 다음에 쓸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다음 학예회에는 미리 반차를 내면 되죠.
후회와 반성, 뉘우침과 후회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자책과의 경계만 보겠습니다.
자책은 사람을 향해 있습니다.
"나는 왜 늘 이 모양이지"라는 말은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나 전체를 문제 삼습니다. 그래서 자책에는 다음에 쓸 정보가 잘 없습니다. 무엇을 바꾸면 되는지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머물러 있으니까요.
자책과 반성, 자책과 자기연민의 차이도 전에 다뤘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후회가 길어지면 자책으로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날 밤 말이 바뀐 것도 그 길을 따라간 거겠지요.
후회라면 그 한 지점을 다음 달력에 옮겨 적으시면 됩니다. 다음 행사 날짜에 반차 신청이라고요.
자책이라면 "나는 왜"를 "그날은 왜"로 바꿔 말해보시면 됩니다. 주어를 바꾸면 할 일이 다시 보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괴로운 것은 같습니다. 말의 주어가 무엇인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