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생전에 해마다 김장 김치를 보내주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김치 통을 십 년째 버리지 못하고 베란다 선반에 올려두셨다고요.
바쁘다는 이유로 고맙다는 전화를 자주 못 드렸다고 하시더군요. 그 분은 그게 후회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십 년을 이어온 그 감정은 후회보다 회한에 가깝습니다.
회한과 후회는 둘 다 지난 일을 돌아보며 다르게 했으면 좋았겠다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그 장면이 자꾸 다시 재생됩니다. 출발점이 같으니 한 단어로 부르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후회는 되돌릴 길이 아직 열려 있을 수 있는 감정이고, 회한은 그 길이 닫힌 뒤에 오래 남는 감정입니다.
후회는 내 선택이 틀렸다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시험 공부를 미뤘다, 그 말을 하지 말걸 그랬다 같은 것들이요. 후회에는 대개 다음이 있습니다. 다음 시험이 있고, 다시 만날 기회가 있죠. 그래서 후회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회한은 되돌릴 기회가 사라진 뒤에 남는 뉘우침입니다.
전화를 드릴 사람이 이제 없습니다. 다르게 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오지 않죠. 그래서 회한은 앞으로 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뭅니다. 시간이 쌓이면서 무게도 같이 쌓이고요.
김치 통이 선반에 남아 있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갚을 길이 없으니 물건이 그 자리를 대신 지키는 겁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같은 일도 시간이 지나면 이름이 바뀝니다. 할머니가 계실 때 느끼셨다면 후회였겠지요.
회한을 후회라고 부르시면 할 수 없는 일을 할 일로 붙들고 계시게 됩니다. 매번 실패하는 숙제가 되는 셈입니다.
회한이라고 부르시면 그건 숙제가 아니라 지나간 시간의 무게라는 것이 보입니다. 들고 있는 이유가 정확해지면 그 무게가 얼마인지도 보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돌아보는 것은 같습니다. 길이 열려 있는지만 보시죠.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