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일을 아직도 자기 잘못이라고 부르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때 다른 방법이 있었습니까?
한참 생각하시더니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그것 하나뿐이었다고요.
그러면 그건 후회가 아닙니다. 후회라고 부르는 동안 십 년을 갚을 수 없는 빚으로 사신 겁니다.
후회는 고를 수 있었는데 다른 걸 골랐을 때입니다. 그때 두 갈래가 있었고 내가 한쪽을 짚었습니다. 책임이 나에게 있습니다.
아쉬움은 고를 수 없었을 때입니다. 갈래가 하나뿐이었거나, 아예 내 손 밖에서 정해졌습니다. 마음은 무겁지만 책임은 나에게 없습니다.
이 둘이 섞이는 이유는 감각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둘 다 지나간 일을 향하고, 둘 다 무겁습니다. 그런데 한쪽에는 책임이 붙고 한쪽에는 안 붙습니다. 이 차이가 전부입니다.
여기서 하나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미련은 지금 되돌릴 여지가 있느냐를 계산하는 마음입니다. 시선이 앞을 봅니다.
후회와 아쉬움은 시선이 뒤를 봅니다. 되돌릴 생각이 아니라 그때를 평가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셋을 한 덩어리로 부르면 아무것도 정리가 안 되지요.
방법은 단순합니다. 그때 실제로 가능했던 선택지를 손가락으로 세어보시는 겁니다.
세실 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아는 것을 빼고 세셔야 합니다. 지금 아는 걸 넣으면 선택지는 언제나 여러 개로 보입니다. 결과를 알고 나서 보면 다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걸 몰랐습니다.
십 년째 무거우셨던 분들은 대개 뒤쪽입니다. 실제로 세어보면 하나인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후회 쪽이면 할 일이 있습니다. 다음에 같은 갈래가 오면 다르게 짚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과거는 못 고치지만 갈래는 또 옵니다. 후회는 그때 쓰라고 있는 감정입니다.
아쉬움 쪽이면 할 일이 없습니다. 없다는 게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애초에 갚을 것이 없었다는 뜻이니까요. 여기서 필요한 건 반성이 아니라 정확한 기록입니다. "나는 그때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 한 줄을 적어두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선택지가 없던 일을 계속 후회로 부르면, 정작 선택지가 있었던 일을 볼 힘이 남지 않습니다. 갚을 수 없는 빚에 십 년을 쓰면 갚을 수 있는 빚은 손도 못 대게 되겠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래 무거운 일이 있으시다면 하나만 해보시죠. 그때 가능했던 선택지를 손가락으로 세어보시는 겁니다.
정확히 부르는 것만으로 작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