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이야기를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날, 아버지가 터미널에서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드셨다고요.
그리고 다음 명절에 돌아가는 날에는 같은 터미널 의자에 한 시간 먼저 와 앉아 계셨답니다. 그 분은 둘 다 아버지의 배웅이라고 하셨습니다. 앞의 것은 배웅이고, 뒤의 것은 마중입니다.
배웅과 마중은 둘 다 누군가를 위해 역이나 터미널, 문 앞 같은 길목에 나가는 일입니다.
시간을 내고, 기다리고, 얼굴을 봅니다. 하는 일이 비슷하니 헷갈리기 쉽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배웅은 떠나는 사람을 따라 나가 보내는 것이고, 마중은 오는 사람을 맞으러 나가는 것입니다.
배웅은 떠나는 사람을 그 길목까지 함께 가서 보내는 것입니다.
마지막 얼굴을 보고, 손을 흔들고, 떠나는 것을 지켜봅니다. 배웅에는 대개 아쉬움이 섞여 있습니다. 끝이 헤어짐이니까요.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든 것도 그 아쉬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배웅하는 사람은 대개 떠나는 사람보다 늦게 돌아섭니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가 배웅의 길이입니다.
마중은 오는 사람을 그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맞는 것입니다.
먼저 나가 기다리고, 도착한 얼굴을 반깁니다. 마중에는 대개 기다림과 반가움이 섞여 있습니다. 끝이 만남이니까요. 한 시간 먼저 와 앉아 계셨던 것도 그 기다림이었겠지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말을 바꿔 쓰면 듣는 사람이 장면을 반대로 떠올립니다. 아버지가 배웅을 나왔다고 하면 떠나는 장면이 그려지니까요.
배웅이라면 떠나는 시간에 맞춰 나가시면 됩니다.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배웅의 몫입니다.
마중이라면 도착 시간보다 먼저 나가 계시면 됩니다. 먼저 와 있는 것이 마중의 몫입니다. 같은 길목이라도 서 있는 시간이 다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길목에 나간 것은 같습니다. 보내는지 맞는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