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책까지 대신 반납하러 오시면서 힘들다고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왜 맡으셨느냐고 여쭈니 거절을 못 하셨다더군요. 그게 이 성격의 모양입니다.
이 성격의 핵심은 여기죠.
부탁을 거절하면 그 사람과의 사이가 상한다고 느끼십니다. 그래서 부탁 하나하나가 관계를 거는 일이 되고요. 그러면 안 된다고 못 합니다.
그런데 부탁하는 쪽은 그렇게 안 봅니다. 안 되면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면 그만이죠. 거절을 무겁게 받는 건 대개 거절하는 쪽뿐입니다.
몇 가지가 섞입니다.
거절당한 기억이 아픈 것. 내가 겪어봐서 남한테 못 하는 거죠. 앞서 거절당할까 봐 못 묻는 성격을 적었는데, 그 반대편에 계신 경우가 많습니다. 쓸모로 자리를 지켜온 것. 도움이 되니까 나를 찾는다고 여기시면 거절은 자리를 잃는 일이 됩니다. 갈등이 무서운 것. 안 된다고 했을 때 생기는 어색함을 못 견디시죠.
한쪽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좋은 면이 있긴 합니다. 사람이 모이고 믿음이 쌓이죠.
다만 값이 큽니다.
정작 내 일이 밀립니다. 남의 일부터 하게 되니까요. 고마워하지 않게 됩니다. 늘 해주는 사람한테는 부탁이 당연해집니다. 이게 제일 억울한 자리죠. 속으로 미워집니다. 겉으로는 알겠다고 하고 안에서 쌓입니다. 그러다 엉뚱한 데서 터지고요.
한번에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우시면 단계를 두시면 됩니다.
지금은 어렵다고 하십시오. 영영 안 된다가 아니라 지금은 안 된다는 말이라 훨씬 쉽습니다. 대신 할 수 있는 걸 말하십시오. 그건 못 하는데 이건 된다고요. 거절이 아니라 조정이 되죠. 시간을 버십시오. 바로 답하지 마시고 생각해보고 말씀드린다고 하시면 됩니다. 그 사이에 정말 할 수 있는 일인지 보이거든요. 이유는 짧게 하십시오. 길게 설명하면 상대가 반박할 거리가 생깁니다. 사정이 있다는 한마디면 충분하고요.
이게 중요합니다. 부탁을 들어주는 건 좋은 일이니까요.
다만 고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안 된다고 못 하시면 되는 것도 골라서 못 하시는 거죠. 그러면 정작 도와드리고 싶은 자리에 힘이 안 남습니다.
한 번만 거절해보시면 압니다. 대개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거절은 사람을 밀어내는 말이 아니라,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말이다.
그다음부터는 안 맡으신다고 하시더군요.
관계가 상했느냐고 여쭤봤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