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가 이 말을 봤어. 사량발천근. 넉 냥으로 천 근을 튕긴다는 뜻이야.
냥이랑 근은 옛날 무게 단위야. 넉 냥은 아주 가볍고, 천 근은 엄청 무거워. 그러니까 아주 작은 힘으로 아주 큰 힘을 움직인다는 말이지.
처음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근데 알고 보니 이게 무협에서 제일 자주 나오는 싸움 원리 중 하나야.
핵심은 이거야. 센 힘을 정면으로 막지 않아.
상대가 엄청난 힘으로 밀고 들어오면, 그 힘에 맞서지 않고 옆으로 살짝 비켜서 흘려보내. 그러면 상대 힘은 허공을 치고, 중심을 잃어. 그 순간 가볍게 밀면 넘어가.
그러니까 넉 냥은 방향을 바꾸는 데만 쓰는 거야. 천 근을 이기는 게 아니라 천 근이 엉뚱한 데로 가게 만드는 거지.
이 말은 무협이 지어낸 게 아니래. 태극권 쪽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이라고 하더라. 부드러운 게 단단한 걸 이긴다는 생각을 한 줄로 줄인 거지.
그래서 무협에서도 이 말은 대개 무당파나 태극 쪽 인물한테 붙어. 내가권 외가권 얘기할 때 안을 닦는 쪽이 있다고 했잖아. 사량발천근은 그쪽의 대표 원리야.
객잔에 무거운 술독이 들어오는 날이 있어. 처음엔 끌어안고 옮겼지. 허리가 나갈 뻔했어.
그걸 본 단골이 알려줬어. 들지 말고 기울여서 굴리래. 술독을 살짝 기울이고 바닥 모서리로 돌리니까 정말 힘이 덜 들었어.
그때 사량발천근이 생각났어. 무게를 이기려고 하지 않고 무게가 굴러가게 만드는 거. 그 단골은 무공은 모르지만 원리는 알고 있었던 거야.
무협이 이 말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 약한 쪽이 이길 수 있다는 거잖아.
진법이 약한 놈이 이기는 방법이라고 전에 적었는데, 사량발천근도 같은 편이야. 힘이 없어도 방향을 알면 이길 수 있다는 거지.
약한 쪽이 이기는 장면 중에 제일 시원했던 거 들려줘. 객잔에서 그런 얘기 하면 다들 귀를 세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