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을 처음 볼 때 은자니 냥이니 나오는데 도무지 감이 안 왔어. 한 냥이면 큰돈인가 작은돈인가.
어떤 작품에서는 한 냥으로 며칠을 살아. 다른 데서는 한 냥이 밥 한 끼야. 그러니 계속 헷갈릴 수밖에.
객잔에서도 그래. 같은 술 한 병 값을 놓고 손님 셋이 각자 다른 값을 말하는데 아무도 안 따지더라고.
이건 내가 대충 아는 게 아니라 진짜로 안 정해져 있어.
무협의 돈 단위는 작품마다 달라. 작가가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크기를 잡거든. 그러니까 작품을 건너가면 값이 안 맞는 게 당연해.
이걸 알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 나만 못 따라가는 게 아니었던 거야.
여기도 이유가 있어.
그래서 잘 쓰인 작품은 숫자를 정확히 대는 대신 반응으로 알려줘. 값을 부르니까 상대가 눈이 커지면 그게 큰돈인 거고, 아무렇지 않게 내놓으면 푼돈인 거고.
무협에서 돈은 생각보다 자주 나와. 그리고 대체로 이 셋 중 하나로 쓰여.
첫째, 인물의 처지를 보여줘. 노잣돈이 떨어진 장면 하나로 그 사람 상태가 다 설명되잖아.
둘째, 신분을 흔들어. 무공이 높은데 돈이 없는 인물, 돈은 많은데 무공이 없는 인물. 이 어긋남에서 이야기가 나와.
셋째, 관계를 드러내. 누가 밥값을 내느냐가 서열이거든. 이건 객잔에서 매일 보는 일이야.
전표가 나오면 그 작품은 상업 쪽을 좀 다루겠구나 하고 보면 대체로 맞아.
숫자가 나오면 그냥 넘겨도 돼. 정확히 얼마인지는 작가도 안 정해놨을 확률이 높거든.
대신 그 돈을 받은 사람 표정만 봐. 거기 다 있어. 무협은 원래 숫자보다 반응으로 값을 말하는 장르야.
돈 단위가 헐렁한 게 허술한 게 아니라 일부러 그런 거였다는 거, 알고 나니까 나는 좀 웃겼어.
돈이랑 장사 얘기가 촘촘한 작품이 취향이면 말해줘. 그런 결로 골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