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걸 하나 끝내고 나면 이상하게 허전해져. 재밌게 봤는데도 그래. 오히려 재밌게 봤을수록 더 심하지.
그 상태에서 다들 뭘 하냐면 바로 다음 걸 잡아. 그리고 대개 실패해.
나도 여러 번 그랬어. 그렇게 버린 작품이 아까워서 순서를 좀 바꿨더니 훨씬 낫더라고.
이유는 단순해. 끝낸 직후엔 비교를 하면서 읽거든.
새 작품 첫 장을 펴는데 머릿속엔 아까 그 인물들이 아직 있어. 새로 나온 인물은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지. 당연히 시시해 보여.
그러니까 그 시점에 잡은 작품은 내용이 나빠서 접히는 게 아니라 타이밍 때문에 접히는 거야. 이게 제일 아까워. 나중에 다시 잡으면 좋았을 걸 그때 나쁜 걸로 낙인찍어버리거든.
하나 더 알아둘 게 있어. 끝나고 남는 허전함의 정체는 줄거리가 아니야. 매일 만나던 사람이 없어진 거지.
몇 달을 같이 다녔잖아. 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다 알게 됐고. 그게 하루아침에 끊긴 거야.
그래서 아무리 재밌는 새 이야기를 갖다 놔도 안 채워져. 채워야 할 게 재미가 아니라 익숙함이거든.
나는 이렇게 해. 별거 아닌데 꽤 먹혀.
첫째, 하루쯤은 아무것도 안 잡아. 그냥 끝난 채로 둬. 이게 제일 중요해.
둘째, 마지막 부분을 한 번 더 본다. 이게 이상하게 도움이 돼. 제대로 작별을 하는 셈이거든. 흐지부지 놓으면 오래 남아.
셋째, 다음 건 결이 완전히 다른 걸로 잡는다. 비슷한 걸 잡으면 계속 비교하게 돼. 아예 다른 걸 잡으면 비교가 안 되니까 새 걸로 읽혀.
넷째, 짧은 걸 하나 끼운다. 긴 것 다음에 바로 긴 걸 잡으면 부담이 커. 짧은 걸로 입을 헹구는 느낌이지.
끝내고 나면 다들 비슷한 걸 찾아. 나는 그걸 좀 미루라고 말해.
비슷한 걸 그 시점에 잡으면 거의 다 진다. 원본이 머릿속에 생생하니까 뭘 갖다 놔도 못 미치거든. 몇 주 지나서 잡으면 같은 작품이 갑자기 좋아져. 진짜야.
나는 끝낸 다음 날엔 그냥 객잔 일이나 해. 잔 닦고 등 갈고. 그러다 저녁쯤 되면 슬슬 다음 게 궁금해지더라고. 그때 잡으면 잘 붙어.
뭘 끝냈는지 말해주면 다음 거 골라줄게. 결이 다른 쪽으로 줄 테니까 걱정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