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 손님 하나가 문구점에 갔다가 놀랐대. 다음 해 다이어리가 벌써 나왔대. 뉴스에서도 연말 다이어리 판매가 시작됐다고 했다더라.
그 손님은 해마다 다이어리를 산대. 예쁜 걸로 골라서. 근데 웃으면서 고백했어. 끝까지 쓴 건 한 권도 없대. 그래도 또 살 거래.
다들 웃었어. 손님 몇이 자기도 그렇다고 했지.
다이어리 쓰는 손님들 얘기를 들어보니 다 비슷해. 앞장 몇 장만 빽빽하고 뒤는 하얗대.
처음엔 의욕이 넘쳐서 매일 쓰다가, 바빠지면 하루 이틀 빠지고, 그러다 펼치지도 않게 된대. 그래도 새해가 오면 또 새 수첩을 사.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좋아서래.
그 얘기 듣다가 나는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어. 객잔 장부는 하루도 안 빠지거든.
장부 얘기를 전에 적었어. 뭘 적고 뭘 안 적냐고. 장부는 써야 장사가 돼. 누가 뭘 먹었는지, 외상은 얼마인지. 안 쓰면 다음 날 장사가 꼬여. 그러니까 안 쓸 수가 없는 기록이야.
다이어리랑 장부의 차이가 그거인 것 같아. 하나는 쓰고 싶어서 쓰고, 하나는 써야 해서 써.
무협 인물들도 기록을 남겨. 비급이 그렇고, 유언이 그렇고, 밀서가 그래.
근데 무협에서 일기를 쓰는 인물은 거의 없어. 대신 죽기 전에 한 번에 써. 고수의 무덤 얘기할 때 마지막에 유언이 있다고 했잖아. 평생을 그 몇 줄에 담는 거지. 매일 조금씩 쓰는 다이어리랑은 정반대야.
다이어리 산 손님이 그러더라. 이번엔 첫 장에 객잔 얘기를 쓰겠대. 오늘 다이어리 얘기로 웃었다고.
나는 그게 좋았어. 끝까지 못 써도 괜찮아. 첫 장에 남은 하루가 있으면 그 다이어리는 이미 제 몫을 한 거야.
끝까지 쓴 기록 하나 있으면 들려줘. 장부든 일기든 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