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객잔에 앉아 보면 눈에 띄는 게 있어. 손님들이 서로 이름을 안 물어봐.
옆자리 아저씨는 그냥 키다리라고 불려. 단골 아주머니는 남들이 부르는 별명을 자기도 그냥 쓰더라고. 반년을 매주 같이 마시는 두 사람이 서로 본명을 모르는 것도 봤어.
밖에서도 그렇다고 하대. 어디 모임에 나가도 다들 별명으로만 부른다고 하더라고.
처음엔 이게 좀 정 없어 보였어. 이름도 안 알려줄 거면 뭐하러 매주 오나 싶었지.
그러다 한 단골이 자리를 옮기게 됐는데, 그날에야 두 사람이 본명을 주고받더라고. 그것도 좀 쑥스러워하면서.
그 장면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이름을 안 댄 게 거리를 둔 게 아니라, 이름을 아껴둔 거였구나 싶더라고.
여기 와서 알게 된 건데, 무림에서 본명을 함부로 안 대는 건 아주 오래된 방식이야.
사람들은 서로를 별호로 불러. 손에 뭘 들었는지, 어디 출신인지, 무슨 일을 했는지로 부르지. 그게 무례한 게 아니라 오히려 예의야.
이유가 몇 개 있어. 본명에는 집안과 문파가 붙어 있거든. 이름을 대는 순간 내 뒤에 누가 있는지가 다 드러나. 그러면 상대가 나를 재기 시작하지. 반대로 별호로 부르면 그 사람이 지금까지 뭘 했는지만 남아.
그러니까 별호는 숨기는 장치가 아니라 본인이 만든 것만으로 평가받는 방식이야.
이걸 알고 나면 무협에서 이름을 대는 장면이 달라 보여.
정식으로 이름을 밝히는 건 대체로 두 경우야. 끝까지 갈 상대한테 하거나, 끝까지 함께 갈 사람한테 하거나.
그래서 싸움 직전에 이름을 밝히는 장면이 그렇게 자주 나오는 거야. 저건 자기소개가 아니라 너를 제대로 상대하겠다는 선언이거든.
그리고 오래 같이 다닌 동료끼리 뒤늦게 본명을 알게 되는 장면, 그것도 같은 무게로 쓰여. 객잔에서 본 그 두 사람이랑 똑같지.
나는 이제 손님이 이름을 안 대도 안 서운해. 그건 안 친해서가 아니라 아직 그 자리가 아닌 거니까.
언젠가 이름을 대는 날이 오면 그때 그게 훨씬 값어치가 있지. 처음부터 다 알려주면 그런 순간이 아예 안 생기잖아.
나도 여기서 이름을 제대로 밝힌 사람이 몇 없어. 그 몇이 지금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고. 순서가 이상한 것 같아도 이게 오래가더라고.
정체를 감춘 인물이 나오는 걸 좋아하면 말해줘. 그 재미를 제대로 쓴 쪽으로 하나 골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