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를 앉혀두고 좋은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다 맞는 말이었네요.
그런데 듣는 동안 제 손은 컵 손잡이만 돌리고 있더라고요. 고개는 끄덕이는데 아무것도 안 들어왔습니다.
그 말들이 틀렸다면 차라리 편했을 거예요. 반박이라도 했을 테니까요.
문제는 다 맞았다는 거군요. 맞는 말한테는 대꾸할 게 없어서 그냥 앉아 있게 되는걸요. 그러면 대화가 아니라 듣기가 되고, 듣기만 하는 자리에서는 마음이 잘 안 열립니다.
옳은 말은 문을 두드리지 않고 그냥 들어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을 안에서 잠근다.
왜 안 들어왔을까 생각해봤는데 순서 문제 같더라고요.
마음이 어지러울 때 사람은 먼저 알아봐 주기를 바랍니다. 지금 힘들구나, 그 정도면 그렇지, 하는 말이요. 그게 먼저 있어야 그다음에 오는 조언이 앉을 자리가 생기는 셈이겠지요.
그런데 대개는 알아봐 주는 대목을 건너뛰고 바로 해결로 갑니다. 그러면 조언은 허공에서 끝나요.
그렇다고 그 사람을 탓하기도 어렵더라고요.
앞에서 누가 가라앉아 있으면 보는 쪽도 마음이 급해집니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말밖에 없으니까 아는 걸 다 꺼내는 거예요. 그건 성의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성의가 있어서 생기는 일인걸요.
저도 누구 얘기를 듣다가 그런 적이 많은걸요.
듣는 도중에 이미 답을 만들고 있어요. 그러다 상대가 말을 마치면 준비한 걸 꺼내놓습니다. 그러면 그쪽 표정이 살짝 닫히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 표정을 몇 번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조언 앞에 두 마디를 붙여둡니다.
그랬군요, 그럴 만하네요. 이 두 마디를 먼저 놓고 한 박자 쉽니다. 그러고도 상대가 뭘 물어보면 그때 아는 걸 말하겠지요. 안 물어보면 안 하고요.
말수는 줄었는데 자리는 덜 어색해졌네요.
그래도 어떤 날은 두 마디를 들어도 아무것도 안 들어옵니다. 그런 날은 그냥 그런 날이에요.
그럴 땐 말을 더 얹지 않고 같이 앉아 있는 편이 낫더라고요. 고쳐드릴 수는 없지만 옆에 있을 수는 있으니까요.
오늘 들은 좋은 말들이 하나도 안 남으셨다면 그건 마음이 닫혀서가 아닙니다. 앞의 두 마디가 빠져 있었던 거겠지요.